아버지의 새로운 집주소는 용미리 제1 묘지 로열층
어느 날,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나도 저렇게 산속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버지는 생전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셨다. 퇴직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라나? 속세를 떠나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부러우셨나 보다. 내가 보기엔 제대로 씻지도 못해 행색도 꾀죄죄하니 말이 아니고 음식도 소박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그의 생각은 어째 완고했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게 말했다.
"나도 저렇게 산속에서 살고 싶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편마비가 되어 가까운 곳도 쉽게 다닐 수 없어 집 밖으로는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이?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가족이 아버지를 자연으로 모시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런 에피소드가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높은 산 꼭대기에서 잘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남의 간섭 없이 뻥 뚫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제2의 인생을 산다는 것, 꽤 낭만적이었다. 아파트도 로열층이다 고층이다 뭐다 낮은 층보다 높은 층의 인기가 많고 고가에 거래가 되고 있잖아? 납골당도 층마다 가격이 다르다는데 한강 뷰, 남산 뷰 이런 개념인가? 혼자 피식했다.
누군가를 하늘로 떠나보낸 후 남은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고인을 어디에 모실지에 대한 것이다. 매장, 납골, 자연장 등 우리 앞엔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있지만 앞으로 죽은 이를 기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임종 전 장지에 대한 고인의 유지가 있거나 아버지처럼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성이 뚜렷하다면 그 뜻에 따르면 된다. 하지만 살아계신 분에게 어디에 묻히고 싶으신지 물을 수 있는 당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보통 장례 전후로 장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갈 보금자리를 찾는 것처럼 장지는 고인의 영혼이 깃들 보금자리를 찾는 일과 같은거니까.
우리는 서울시립 자연장 용미리 1구역, 산꼭대기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
아버지를 땅에 묻으며 그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모든 애증의 감정들은 함께 묻었다.
이제 훌훌 털고 소원대로 드넓은 땅과 탁 트인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시길 바라면서.
아버지의 새로운 집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제1 묘지 로열층이다.
아버지, 거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