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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Kim Aug 29. 2020

24. 화장 후의 그는 가볍고 따뜻했다

한 줌의 가루로 남겨진 육신의 무게(서울시립승화원)


  장례 이틀째 되던 날, 입관식에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앞으로 기억하게 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그의 모습이었다. 코끝을 찡하게 찌르는 약품 냄새, 까슬한 수의를 입고 어딘가 어색한 형형색색의 꽃장식들 속에 파묻혀 있는 아버지의 파리한 얼굴. 나는 차갑게 굳어 묵직해진ㅡ 어딘가 낯선 그를 들어 관 속에 넣으며 울부짖었다.

'고생 많았어요. 편히 쉬어요.'라는 어머니의 울먹임 속에 아버지는 세상과 영영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문상객들을 맞이하느라 온몸이 지쳐있었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여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아마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은 앞으로 점점 흐릿해질 것이고 마지막 그 낯선 얼굴이 오버랩되어 결국엔 내 기억을 장악해버릴 것 같은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꿈에 나온다면 부디 살아계셨을 때의 온화한 얼굴로 나를 찾아주세요.' 가장 가까웠던 사람, 아버지였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기억 속의 두 얼굴이 주는 섬뜩한 간극에 나는 밤새 뒤척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이 혼미한 채로 발인예식까지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늘 그리워하던 손자의 품에 꼭 안긴 사진 속 아버지와 관 속의 아버지와 함께. 어느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내 조카 하랑이는 혹여나 영정사진을 떨어뜨릴까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버지는 하늘에서 이 모습조차 귀엽고 대견하다며 뿌듯해하고 계실 것만 같았다. 화장장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검은 군중의 행렬 끝에 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구나.' 생면부지지만 서로를 동병상련의 눈빛으로 조용히 위로하면서.


 공장처럼  가쁘게 돌아가는 화장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주눅들어 있었다. 애써 침착하려 배정받은 17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7 1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다소 과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던 사이 아버지는 그렇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줌의 재가 되어 있었고 육신의 흔적은 하얀 종이에 싸여 작은 나무 상자에 모셔졌다. 이제 아버지가 현실에서 차지할 공간은 고작  만큼이라 말하는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빈곤한 사람도 죽고 나면 대우주 속에서 이렇게 미미한 존재인데 어째서 우리는 아등바등 사는 걸까?


 묵직했던 그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한 줌의 가루로 남겨진 그의 육신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웠다. 이 세상에서 느꼈던 고통과 고단함, 괴로움을 다 떨쳐버리고 이 가벼운 무게 만큼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라며 화장장을 빠져나왔다. 상자에 담긴 아버지를 꽉 끌어안자 내 가슴이 순간 뜨거워졌다. 마치 아버지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괜찮아. 고마웠다.'라고 속삭이며 마지막으로 나를 꽉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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