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빠 만들어주세요
부자아빠 만들어 주세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아온 나는 늘 심심하여 집에 있는 어른 책까지 뒤져보는 게 다반사였는데, 그중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여행을 다니는 여행 서적을 특히 탐독했고, 하고 싶은 일 하며 꿈을 이루고 온갖 세상을 경험하는 삶이 내 무지개 너머 로망으로 박혔다. 그저 꿈을 좇다 보면 저절로 돈은 알아서 따라오는 거라 가벼이 여겼고 내 성장 과정에 주위에는 자산가가 없었으며 오히려 돈 이야기는 결국 갈등과 싸움의 주제였기에, '돈'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어이기도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경제 지식이 무지한 채 금융 문맹인 일인으로 살아오던 중, 분명 같은 시간 일하며 살아왔는데 눈덩이를 마구 굴려, 꿈에 모터달고 다가간 가까운 이들을 보고야 비로소 현타가 왔다. 어렸을 적 로망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삶의 시작점이 무엇보다 올바른 경제 지식, 그러니깐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을 직장 생활 20년이 다 돼서야 알게 되었으니, 지나간 시간이 아깝지만 지금이라도 배우고 있다.
창작
그러다 퍼뜩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어린이 시절의 내가 책장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야 양질의 재테크 책자와 영상이 넘쳐서 어렸을 적부터 다들 알아서 똘똘하게 교육시키고 배우는 시대이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이 돈을 버는 방법과, 관리하고 쓰는 방법을 미리 접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선택은 아이들 모두에게 노출되어 일찌감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이 중요한 이야기를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정으로, 그러니깐 초등학교 공교육부터 비중 있는 시간으로 정교히 짜였으면 좋겠다고 여겨졌다. 모두들 많은 시간 입시 공부하느라 진을 빼는데, 정작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돈 버는 이야기를 해주는 부자 아빠를 공교육에서는 만날 수 없기에, 이번에 나는 돈키호테가 되어서 '교육부'에 한번 거절당하기로 결심했다.
민원 신청은 처음이라
일단 교육부를 검색창에 찾아서 들어가 보았다. 교육부 홈페이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안 들어가 보아서 당연히 엄청 헤맬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너무나 친절하게 바로 민원 올리는 창이 바로 나온다.
저항
그런데 막상 민원이라는 단어를 보니 쓰기가 좀 꺼려졌다. 사실 수많은 민원에 답변하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다. 특히 나 역시 일터에서 일하면서 민원에 대한 답변서를 수차례 써 보았기에, 그 업무적인 그 느낌 너무나 잘 알기에, 또한 이건 해도 어차피 해결이 안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쌍방 시간 소비인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민원 주체가 되기 싫었고 그래서 특히나 이번 거절 미션을 개인적으로 내가 받아들이기 더 어려웠다.
넘어서기
그러나 최선을 다해 생각을 고쳐먹었다. '만날 생각만 하면 뭐하나. 생각만 한다고 뭐가 바뀌나. 안 되는 거 알면서도 해보는 것. 그 마음을 넘어서는 게 바로 거절 미션의 핵심이니깐 결과까지 미리 내가 재단하고 평가하지 말고, 그냥 나는 그저 내 의견을 말해보고 거절을 당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며 민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적는 게 시간낭비 같았지만 뭐 어때 나는 지금 미션 수행 중일뿐이다. 그래도 최소한 민원을 접수하는 분 한 명이라도, 이것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라도 마음이 닿게 적어보자라고 결심하고 단순한 한 줄 요청보다는 최대한 성의 있고 체계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긴 내용을 적은 후 발송 버튼을 보내니 바로 끝이다. 늘 느끼는데, 기나긴 고민에 무색하게 실행은 생각보다 너무나 간단하다. 전혀 어려울 게 없다. 정작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밖에 없다. 여하튼 난생처음으로 나는 거절 미션 덕분에 민원 신청을 해 보았다.
질문
대상: 교육부
내용: 초등 정규과정에 '경제' 관련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결과: 미션성공 (거절당함)
그리고 다음날 친절하게 접수문자까지 오고 바로 답변이 올라왔다.
답변은 너무 친절하고 상세했으며, 현재 초등 교육과정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경제 관련 교육 및 중고등학교에서의 연계 내용, 그리고 2022년의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강화 내용을 명시해 주셨다. 나도 모르던 내용을 알게 되었고, 상세한 답변에 감사하여 만족도 최고 점수를 드렸음에도 왠지 겸연쩍고 미안했다.
후기
어쨌든 간 나는 민원을 난생처음 써봤으며, 거절 미션이 아니었으면 분명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답변자에게 미안하기만 할 뿐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아마 평생 시도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일단 시도를 해 본 것 자체만으로 이미 굉장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민원접수와 처리절차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고 민원을 올리기 위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증명하는 방법을 다시 한번 알게 되면서, 다음에 또 세상을 바꾸고 싶은 내 안의 돈키호테가 갑자기 생긴다면 그때에는 더 가동력 있고 더 힘차게 보조해서 달리도록 응원해주고 싶다. 바다 모래에서 말라죽어가는 생명체를 다시 바다로 집어던져주는 사람에게 누가 왜 이런 소모적인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일단 이 놈은 살릴 수 있잖아요'라는 대답을 했다는 어느 책에서의 내용이 문득 생각난다.
극단의 개인주의인 내가 현재 이런 엄청난 오지라퍼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나에게는 일탈이자 생애 최초 도전이었던 국가기관에 거절당하기 첫 번째 성공 미션이었다.
뜻밖의 효과
그런데 이 미션을 한지 한 달쯤 지나서 나는 뜻밖의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나의 월별 거절 미션 루틴을 나는 가족에게 늘 떠벌려서 자녀들은 모두 알고 있다. 호기심 많은 딸이 어느 날 노트북으로 열심히 적는 나에게 뭐하냐고 물어봤고 나는 이번 달 거절 미션 결과를 적고 있는데, 이번에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해 초등학교에서 가르쳐 달라고 물어봤었고 아마도 거절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대화 자체를 잊고 지내던 중 어느 날 딸이 하교해서 나에게 신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알려줬다.
(딸) 엄마. 오늘 학교에서 엄마 거절당한 거 해 줬어.
(나) 엥?
(딸) 학교에서 경제 교육 같은 거 해 줬어.
라며 나에게 종이를 보여줬다. 특강 형식으로 외부 강사가 와서 단체 교육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제목에 '경제'라는 단어가 있어서 내가 생각났단다. 깜짝 놀랐다. 정말 지나가는 대화였는데, 딸은 경제 교육을 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냥 옆에서 곁눈으로 보고 직감으로 알았던 것 같고, 비록 내가 관련 책 읽기나 영상 보기를 아이들에게 강권하진 않았지만 본인도 모르게 '돈'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것으로 충분히 족하다. 그걸로 교육부에 거절당한 나의 거절 미션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고 이렇게 또 영향이 흘러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뿌듯해져서 딸내미를 한번 꼭 안아줬다. 또한 아는 대로 보이는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있는 금융교육센터에 어린이들이 보기에도 좋은 영상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새로 알게 되었고, 어린이를 위한 좋은 경제 만화책들도 눈에 점점 보인다. 그렇다. 세상에는 나처럼 어린이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야 내 눈에 비로소 잘 보이게 된 건, 내 사소한 생각을 행동과 피드백으로 더 강력하고 공고하게 만들어준 거절 미션의 허리케인 효과덕분이었다. 이렇게 국가 기관에 민원까지 올려본 개인주의자는 이제 더이상 개인주의자가 슬쩍 아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