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이란 무엇인가.

by 말자까

연말에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이란?

크리스마스? 나이가 한 살 더 먹기? 연말회식?


직장인인 나에게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은 바로..

연말 인사이동이다.


희망부서 선택 메일을 필두로 누구는 어디로 가고 누구는 어떻게 된다더라 하는 소문이 점점 무성해지고, 나 역시 혹시 내일 이 책상 빼라는 거 아닌가 또 이사가야 하는가 머리가 하얘지며 불안에 떠는 일을 연말마다 쳇바퀴를 돌다 보니 어느덧 20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와중에 이번에는 승진 인사까지 꽤나 오랫만에 하게 되어서 나는 또다시 승진인사에 대기를 타는 직장인 수십명 중 1인이 되었다.


이번으로 어느덧 3번째 삼수생이 된 나는 무지 오래된 1n년 전부터 김과장이다. 올해부터는 어쩌다 보니 같은 과장들 중 내가 연차가 가장 높고, 실로 선배님이 한 명도 없는 이 곳에서 내가 옳게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이어져, 마음 속으로 나는 이 곳을 운영해야 하는 역할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나 혼자 착각하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1년을 꾸리고 살았다.


사실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능력보다는 운과 주위의 도움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운과 주위의 도움 역시 평소에 내가 만든 것일테니 모든 것은 나에게서 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 축구팀이 9%의 확률로 16강에 갈수 있다고 통계가 말하더라도 우리는 포르투칼전을 열심히 응원했고, 세계 넘버원 브라질전과의 경기에서도 우리는 그 누구도 패배가 아닌 승리를 소원했다. 나 역시 내가 운이 없든, 지은 죄가 많든, 정치 친목에 약하든 간에 온갖 안될 확률보다는 희박하더라도 좋은 확률에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마땅히 그래야만 할 내 마음이어야 할텐데 요상하게도 내 발목을 잡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너는 리더가 될 자격이 없어' 라는 말 한마디. 이상하게 그 말이 나는 지금도 괴물처럼 무섭고 나를 주눅들게 한다. 편안하게 전화를 하고 싶다가도, 맞아 나는 자격없는 사람이지 하고 그냥 주저하고 만다.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마음에 물주는 법을 배우고 여러 방면으로 성장한 것은 자명하지만, 아직도 그 말은 내 안 어딘가에서 숨어 있다가 이 세계에서 내가 홀로라 생각되고 자신없을 때 질세라 다시 튀어나와 나를 조롱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그냥 '그렇구나' 너 또 오랫만에 나왔구나 하고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억누르면 더 커져서 여러번 잡아 먹혔던 경험에, 나는 그냥 나의 모든 마음. 그게 '불안' 과 '고립', '주눅' 이라 할 지라도 그 자체를 인정하며 그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저 그런 마음이 또 왔구나. 또 갔구나. 하며 저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 보듯이 바라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잡으려고 부지기수로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그 말 한마디는 관심받지 못해서 제 풀에 죽은 아이처럼 다시 어디론가 쑥 들어간다. 승진이 된다면 될 이유가 있을 것이며 안된다면 안될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내가 만들었을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어떻게 되든간에 내가 현재의 내 마음가짐이 바뀔까?


글쎄 내가 이 곳에 내년에도 존재하기를 허용 받는다면, 내년 역시 올해 같이 병원을 꾸려나갈 것 같다. 그래도 올해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고 웃을 일이 더 많은 분위기를 의도적이라도 만들며 살고 싶고, 올해처럼 좋은 후배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워가며 살고 싶다. 단 한마리라도 연이 닿는 말에게 보탬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촘촘히 여러 사람의 능력과 시스템이 세트 플레이처럼 잘 굴러가도록 유지하며 살고 싶다.


뭐라 불리든간에 내 의지가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단지 중요한 건 이제 리더가 될 자격을 남에게 평가받고 싶지도 않고, 내가 남을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재미가 없어져서 저 구석 먼지처럼 존재하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한마디로 내 자신을 괴롭히며 평가 당하기를 기다리며 방어하기보다는, 그냥 하루하루 겹겹이 남에게 피해가지 않을 정도의 나의 진심을 쌓아가며 서로 그렇게 쌓아가는 것들이 공고해지고 그러다가 내 한겹이 누군가의 살이 되기도 하며 무심한 듯 단단하게 외롭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 아니 그럴 예정이다.


그래도? 승진하면 좋긴 하겠다. 월드컵에 우리나라 경기는 끝났는데 다음주 게임의 결과가 남아있긴 하다. 나는 저 하늘의 구름이 또 왔구나 또 갔구나 하며 알아차리는 데나 신경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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