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
초여름이 되니 동물병원 입원실 천장에 제비가 집을 짓고 싶어서 끈질기게도 건물 속을 침입했다. 내 일터 안에 무임승차하려는 제비가 싫어서 나는 끈질기게 제비를 쫓아댔다. 하지만 호시탐탐 집 지을 궁리만 하던 제비가 사람이 없던 휴일에 기습 공격을 하여 기어코 둥지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제비의 내 집 마련 욕구에 혀를 내둘렀고, 동물병원 입원실 건물 천장 구석에는 결국 제비집 둥지 하나가 생겼다. 일단 둥지를 틀고 나니 알을 바로 품기 시작했고, 또 시간이 지나니 한참을 새끼 모이를 나르느라 병원을 시끄럽게 내 집 마냥(?) 드나들었다. 5개의 알에서 새끼가 부화했고, 새똥은 정말 무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청소하기에도 너무나 성가시고, 말들이 위생적으로 치료받는 동물병원 입원실에 새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모이를 전달하러 날아다니는 게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다. 제비는 엄청나게 집요하리만큼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우느라 짹짹거리며 내 성질을 건들더니, 어느 날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적막한 분위기가 낯설어서 올려다보니 새끼가 벌써 다 성장해서어느새 둥지를 떠났다! 그리고 제비 부부도 이제 떠났다. 빈 둥지만 남았다. 내내 성가시게 할 줄만 했던 제비 가족이 생각보다 빨리 떠나버리니 내쫓아내려고 성화였던 지난날들이 무색해졌다.
빈 둥지를 멍하니 보다가 슬며시 나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20대에 낳았던 나의 첫 아이는 어느덧 14세가 되었다. 내 아이가 아기로 불렸던 그 시절은 마치 제비가 모이 주느라 정신 빠지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나 역시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가장 바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첫 아이의 출산과 육아도 중요했지만 회사 안에서 뒤처지지 않고자 하는 내 성취도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매 순간이 힘들고 엉망진창 같았다. 어쩌면 이런 하소연을 하는 나를 한참 위의 선배가 본다면 코웃음 치며 뒷목을 잡을 수도 있다. '고작 그거 힘들었다고 지금 징징대는 거냐?' 하긴 50세가 넘는 선배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 내가 일하는 이 사무실에 재떨이가 있었고 욕설이 난무하며 여자 직원을 ㅇㅇ양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엄청나게 빠른 사회의 변화 속 한복판에 서 있는 내 삶의 기록이, 나중에 태어난 누군가에게는 정말 신기하게 느껴질 것도 같다.
결혼 후의 고민은 대부분 육아와 출산에 관한 주제일 것이다. 특히 요즘 들어 육아는 내 시간과 자금을 뺏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된다. 당장 주위만 둘러봐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는 부부가 많이 보인다. 나는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직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동료가 모두 남자뿐인 세상에 살다 보니, 휴직 중에 내가 뒤쳐지고 한직으로 내쳐지는 게 가장 불안했다. 그래서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허용된 휴직 기간을 맘껏 쓰지는 못했다. 또한, 복직해서도 육아에 얽매이는 내 모습이 나의 약점처럼 느껴졌다. 분명 아이가 오늘 어디가 아프고, 뭘 먹었는지가 가장 궁금한 내 관심이었지만, 막상 일터에 가면 남자들 사이에서 육아 관련 생색을 절대 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를 썼다. 안 그래도 여자가 전무한 남자들의 정치판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내는 건 매우 버거웠다. 예를 들어 야간에 응급진료를 못 나온다고 공표하는 순간, 나는 이 세계에서 바로 아웃될 것 같다는 외로운 싸움판을 스스로 상상했다. 여자를 뽑았더니 그만둬서 안 되겠다는 말을 더 이상 듣기 싫어서, 그렇게 과하게 나를 내몰았고 매 순간 전쟁처럼 살았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꼰대라떼'의 넋두리로 들릴 만큼, 요즘은 제도와 분위기가 바뀌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말이 요즘에는 익숙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야말로 정말 철저하게 내 인격을 분리한 채로 두 집 살림을 하듯이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시계를 들고 뛰어다니는 엘리스의 토끼처럼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다. 천천히 즐길 시간은 없었다. 그저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 맞추느라 뛰어다녔고, 휴일에는 주중에 못 놀아준 게 미안해서 어디라도 부지런히 나다니면서 피곤해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시간은 매일 밤 애들의 취침 후에 돌아오는 짤막한 육퇴 후의 자유시간이었다. 그렇게도 나만의 시간을 원했으나, 실상은 둘째의 아토피와의 전쟁으로 거의 밤잠을 반납했던 기나긴 시절이었다. 그래도 여지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바쁜 척하는 부족한 엄마 손 아래에서 아이들은 커갔으며 이제 둘 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키웠던 양육의 시절이 끝나면 한숨 돌릴 줄 알았는데, 요즘 느끼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이야말로 정말로 엄마의 육아휴직이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역시나 어렵다. 그동안 워킹맘으로 살면서 정보력이 딸리다 보니, 갑자기 주어진 학부모 입시 모드에 적응이 안돼서 뒤따라가는 게 몹시 벅차다. 또한, 휴가를 쪼개서 기나긴 방학 기간 각자의 학원 스케줄 사이사이 끼니를 챙기고 라이드 해주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그 와중에 이제는 아이들과의 감정 노동까지 더해진다. 늘 웃어주고 나를 껴안아주던 해맑은 아기들은 이제 없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동굴로 들어가는 사춘기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내 속을 뒤집어 놓을 때면 온몸에 힘이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는 가장 아등바등하며 살아댔던 육아 초기 시절을 다시 끄집어내는 게 내 힐링 포인트다. 그 시절 나는 블로그에 거의 매일 아이들 사진과 육아 이야기를 포스팅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리 열심히 저장한 내 포스팅들이, 부메랑처럼 요즘 되돌아온다. 노트북을 열면 항상 아침에 'ㅇㅇ년 전 오늘'의 제목으로 예전에 내가 저장했던 그 시절 사진 포스팅이 나에게 매일 아침 편지처럼 되돌아온다. 사진을 열어보면 사춘기 아이들과 싸우느라 천불이 났던 내 속마음도 신기하게도 빠른 속도로 식혀진다. 오늘은 14년 전 포스팅에 큰 아이가 뒤집기를 막 시작하던 영상이 있었다. 그 포동한 팔다리와 뺨따귀가 얼마나 예쁜지 수십 번을 돌려보았다. 벌써 녀석은 몸은 10배도 넘게 무거워졌고, 키는 나보다도 커져 있다. 문득 그 아이가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저 신기해졌다.
방학이라고 아들은 어제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더니만, 늦은 아침에 밥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묵묵 부답이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천불이 났다. 하지만 오늘은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지 않고, 그냥 등을 슬며시 쓰다듬어줬다. 엊그제 뒤집기를 하던 아이의 영상과 빈 둥지가 오버랩되던 날이어서 더욱 그랬다. 저녁에는 학원 다녀온 딸에게 뜬금없이 사랑표현을 한번 해봤다. "딸, 사랑해." "... 응." 머쓱하게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간다. 갑자기 사랑 공격을 받으니 어색했나 보다. 사실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이니, 이제 정말 내 둥지를 떠날 날이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기도 하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말이다.
결혼 전에는 내 인생에 아이들이 이렇게 크게 들어온 채 살아가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사춘기부터 줄곧 비혼을 꿈꾸었던 나는, 내가 결혼을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들이 이렇게 큰 축으로 나를 이끌며 내 삶이 흘러갈지 정말 몰랐다. 한때 세계를 방랑하기를 원하던 독립적인 유형의 나조차도, 내가 정말 잘한 일 중에 하나는 아이를 낳은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결혼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 망설일 것 같다. (미안합니다 남편). 그런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아이를 낳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결혼을 하는 선택을 다시 할 것 같다. (내가 두 번이나 선택하다니 남편은 운이 좋다).
사실 나에게 육아는 분명 힘들었다. 요즘 말로 육아 지옥이었고 피곤에 절어서 살았으며 여전히 집안 살림은 피곤하다. 아이를 키우느라 엄청난 돈이 나가고 있어서, 나를 위한 소비가 철저히 후순위다. 언제 좋은 날이 올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내 노후를 책임지지 않을 것도 안다. 이성적으로 볼 때 나 자신에게 육아는 어떤 유형의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입시생 부모로서 어떤 고난과 역경을 거쳐야 하는지 서서히 그 실체가 보이고 있다. 그리고 독립해서 취업 그리고 혼사까지도 엮여 있고, 그 후에 또 이어지는 자녀의 육아에 우리도 같이 슬그머니 휘말려 들어갈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가도 정말 아이를 낳겠다고? 나도 나 자신을 이해 못 하겠다. 하지만 정말 나는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이 불구덩이 속에 그냥 들어갈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건물 밖으로 쫓아내도 기어코 창문 사이로도 비집고 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는 제비의 본능이기도 한 것 같다.
제비 새끼들이 다 커서 둥지 밖으로 날아가버리면 제비 부부는 어떤 마음이 들까? 집요한 집 짓기와 모이주는 열정을 옆에서 계속 지켜봐 왔던 나는, 갑작스레 남겨진 빈둥지를 보며 제비 부부가 지금 뭐 하고 살지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50대가 되어서 아이들로부터 독립할 그날을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미 나는 플랜도 있다. 아이들 독립하면 내가 키우고 싶은 강아지도 드디어 키우고, 보고 싶은 공연들 마음껏 보면서 자유로운 저녁 생활을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나의 노년기를 꿈꾸었는데, 제비의 빈둥지를 보니 갑자기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지금 제비가 떠난 우리 병원의 빈둥지는 이제 아무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막상 50대가 된 나도 빈둥지의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지독한 갱년기를 보낼지도 모른다. 자유를 기대하는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둥지를 떠난 새끼 제비는 다음 해에 무조건 다시 찾아와서 이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또 만든다고 한다. 그처럼 삶은 계절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흐름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걸 내가 내 멋대로 잘라내거나 피해 갈 수는 없다. 지금은 영원처럼 기나긴 힘든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어느새 또 끝이 나 있었고 아쉬워할 것이다. 나는 또 추억의 사진첩 편지를 아침마다 받으며, 지금 이 사춘기 시절 아이들과 아웅다웅 버텨내고 있는 현재를 미래에는 분명히 그리워할 것이다.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고 모이를 입 안에 넣어주며 새끼를 키워냈던 삶은, 사실상 제비의 긴 생에 비해 꽤 한정된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한정된 시간의 한복판을 현재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