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신간 리뷰
한비아 작가님의 5년 만의 신작.
결혼 3년 차 새댁이 된 그녀. 네덜란드 출신 안톤과의 신혼생활을 그린 에세이로 돌아왔다.
여전히 생기발랄하고 술술 읽히는 특유의 필력에 빨려 들어가, 나는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언니와 왁자지껄하게 근황 수다 한판 떨고 집에 온 것처럼 순식간에 책을 흠뻑 취해서 다 읽었다. 열정과 긍정의 대명사인 그녀는, 역시나 60대의 신혼 생활을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에겐 죽음이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고 멀다. 노년이라는 단어 역시 아직은 관심이 없던 단어였는데, 나에겐 늘 팔팔했던 젊은 언니가 어느덧 60대가 되어서 노년의 삶을 담아낸 에세이로 돌아왔다니 그녀의 노년 근황은 과연 어떤지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궁금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놀라운 것은, 그녀가 말하는 결혼 생활, 삶의 패턴, 그녀의 배움, 그녀의 계획 들이 결코 60대 노년의 느낌이 아니고,
'바람의 딸 한비야' 그때 그 느낌 그대로 여전한 '팔팔한 젊은 언니'의 그 텐션 그대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때 그 시절의 반짝이는 눈으로 속사포 같은 말투 그대로 책이 나에게 다가오니, 도무지 나는 그녀를 할머니라고 칭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80대 왕언니를 필두로 한 산행길을 계획하는 이야기, 60대의 박사 학위 취득기 등의 주제를 읽다 보니, 앞으로의 그녀 역시 마지막 생까지 '더 팔딱거리고 에너제틱한' 한비야로서 나에겐 영원한 '팔팔한 목표 돌진형 젊은 언니'로 존재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지금처럼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고 따라다니고 싶어 졌다.
그래도 그녀도 사람인데 과연 이런 원색의 강인함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종교인가, 타고난 기질인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이번 책에는 이 단락이 인상이 깊었다.
p274-275. 비야
외부의 밧줄이란 아무리 굵고 튼튼해 보여도 조금만 상황이 달라지면 새벽안개처럼 사라지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무엇이라는 걸. 기준과 호불호가 손바닥 뒤집히듯 쉽게 변하는 세상에서 믿을 건 스스로 서 있게 하는 자기 뿌리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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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힘들고 괴롭더라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외부 밧줄을 모두 빼고 오로지 나만 남을 때 묻고 답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질과 천성을 가졌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에게도 보탬이 되기 위해, 적어도 해가 되지 않기 이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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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외에는 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 몸부림치며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가정, 그 힘겨운 과정 중에 나라는 나무의 잔뿌리는 굵어지고 땅속 깊이 내려간다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굳건한 뿌리로 세상의 과분한 칭찬에도 억울한 비난에도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고 살고 싶다. 거센 비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째 뽑힐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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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한 조건은
나답게 살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남 눈치가 아니라 내 눈치를 봐야 한다. 내 장단에 맞게 춤춰야 한다.
결국 그 힘의 원천은 자신에게서 나와야 하는구나. 살다 보면 생길 아픔들. 억울함. 분노. 슬픔 그 모든 것을 겪을 때 결국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내가 만든 잔뿌리구나.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질문과 탐색으로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뿌리내림의 과정이 자존감이고 그것이 결국 강인함으로 되는구나. 나를 돌보고 나를 알아가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근본은 수신. 바로 나라는 깨달음.! 앞으로도 역시 나를 아끼고 인정하고 알아가는 부단한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구나.
p281. 안톤
은퇴 후 종종 일이 그립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마디로 답하면 하나도 그립지 않다. 충분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다. 인생의 오전인 27세에 집을 나가 열심히 일하다 66세, 인생의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는 차를 마시는 중이다. 이 시간이 넉넉하고 평화롭다.
그녀의 남편 안톤의 글. 구호가로 평생을 살다가 66세에 자발적 은퇴를 한 그의 이 담담한 글 역시 나의 마음을 울렸다. '은퇴 후 일이 전혀 그립지 않다. 충분히 할 만큼 했다.' 라니 그 역시 얼마나 열정적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너무나 너무나 마음을 울리는 관극을 했다. 일명 '대 레전'을 처음으로 겪은 날이었다. 그간 관극을 할 때마다, 한번 더 보고 싶고, 다음번에는 이런 페어로 보고 싶고, 이 자리에 앉고 싶고, 등등의 이런저런 갈증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얼마나 모든 것이 완벽하고 만족스러웠던지, 하물며 공기 하나까지 떠도는 먼지 한 톨까지의 그 순간과 공간을 잊고 싶지 않고 그 자체 그대로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이 상태 그대로 마음에 남기려면, 이제 그만 봐야 될 것 같은 마음이 관극 역사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 역시 내가 정말 갈증 없이 후회 없이 다 펼쳐내고, 이제는 뒤도 안 보고 만족스럽게 은퇴해야지.라는 날이 안톤처럼 올 수 있을까.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 샤워 후 편하게 차를 마시는 그 평화로운 노년을 위해서, 자발적 은퇴를 하고 싶은 그날이 나에게도 왔으면 좋겠다.
비야와 안톤의 60대와 70대.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플랜이 평온하고 상쾌하게 펼쳐지기를 소원한다. 저 멀리 시골 구석에서 나의 작은 기도 화살을 날려본다.
그림출처: 알라딘, 책 내지 발췌
알라딘 링크: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633411&start=pnaver_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