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달래와 벚꽃은 정직하다.

by 말자까

어느새 벚꽃은 순식간에 만개해 버렸다가 일순간의 비와 바람으로 분홍 잎이 흝어져 가버렸고, 미세먼지와 황사에 정신이 혼미하다. 아니, 실은 내가 이들을 오롯이 보고 느낄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 벚꽃은 죄가 없다.


변덕이 죽 끓었던 3월의 날씨처럼 나 역시 그간 혼미했다. 하루에도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요거 했다 하는 모양새가, 벌려놓은 일은 많아서 그런지 왜인지 파악이 안될 만큼 삶이 정리가 안되었다. 노동이 바빠서도 아니었고, 실상 시간이 많으면서도 뭔지 모를 불안감과 초초함 속에서, 쉰답시고 핸드폰 불빛만 마냥 보며 눈이 피곤하기만 했다.


갑자기 오늘, 좋은 분께서 바로 꺾은 고사리와 막 뽑은 달래를 건네주셨다.

하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딱 이 철이었다. 늘 같은 철이었지만, 나는 해마다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과도하게 남을 의식하던 시절이 있었고, 과도하게 발랄한 척 사람들에게 안기고 싶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과도하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굴을 파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그 당시 이 분은 오늘처럼 문득 나타나셔서 꺾은 고사리를 무심하게 가져다주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누가 나를 여겨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랄까. 아무도 보지 않아 시들어가는, 또는 시들어 가고 싶었던 사무실 한구석 화분에 누군가 무심히 준 물 한줄기랄까. 그 신선함과 고마움에 충격을 받아 어딘가에 글도 남기고 내 안의 깊은 원동력 구슬 하나로 묵직이 남겨졌던 그 시절의 4월.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갔고, 나는 안타깝게도 그래놓고도 그 구슬을 점점 잊고 있었다. 하지만 해마다 고사리는 여김없이 고개를 들고 달래는 분명 뿌리를 내렸을 거다. 몇 년 후 오늘 이 분은 여김 없이 마치 이 정직한 식물들처럼 나에게 이 아이들을 무심히 건넨다. 그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하아.. 마음이 일렁인다.


고사리는 정직하다. 달래는 정직하다. 벚꽃은 정직하다. 그냥 때가 되어서 드러날 뿐이고, 때가 아닐 때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잊힌다. 하지만 그들은 잊힐 뿐 사라지지 않고, 잊힘에 동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나는, 뭘까. 한 해는 여전사가 되었다가, 한 해는 먼지 구덩이처럼 굴러다닌다. 한 해는 운동에 미쳐있다가 한 해는 폭식 폭주로 만 달린다. 막 잘난 것처럼 새벽부터 부지런히 우쭐대다가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하루를 눈만 꿈뻑일 때도 많았던 나는, 그들이 무섭도록 정직하게 같은 시간에 등장하니 마음이 일렁이고 아프다. 그건 나 자신이 이들과 비교해 부끄럽기 때문이겠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 정직한 이들에게 그냥 오롯이 안기고 싶다.


오늘 저녁에는 고사리를 씻고 한솥 삶은 후에 물에 담가놓고, 베란다에서 신문지 펴놓고서 달래를 손질해야겠다. 내일 아침은 고등어에 고사리 넣어 지지고, 달래 장을 해놓고서 자근자근 먹어봐야겠다. 부족한 요리겠지만, 왠지 그래 보고 싶다.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자근자근 만들다 보면 이 정직한 이들을 영양분 삼아, 이 감사함을 더 생생히 기억할 것 같다. 그렇게 고사리 고등어 지짐이랑 달래 장과 함께 4월은 이들처럼 정직하게 맞이하고 싶다.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아 뭐가 그리 불안한지 잘 알아주고, 또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다. 가식 빼고 눈치 빼고, 온전히 나 자신이 이끄는 4월을 이들이 도와줄 것 같다면 너무 억지일까?


벚꽃은 이제 거의 없지만 이제 그 곳에서 솟아나는 연두 잎들은 오며가며 잘 살펴봐야겠다. 자연이야 말로 하는 것도 없는데 모든걸 주는 츤데레같다. 그리고 간간히 사람도. 아. 그리고 이 분이 좋아할 조그마한 선물을 고민해봐야겠다. 무심히 던질만한 정성스러운 선물과 함께 4월이 곧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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