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사람에게 현금 만원을 주자’라는 다짐을 갑자기 했다. 미국의 ‘팁’ 개념이고, 내가 좋아하는 샤이니 선생님 인스타에서 백화점 주차요원에게 만원을 주었다는 릴스를 보게 된 게 계기였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래도 안 할 것 같아서, 바로 실행하겠다는 답글을 달았더니, ’제주산타 아람‘이라는 답글을 적어주셨다.
앗, 그럼 또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올해가 가기 전에 누구에게 만원을 드릴까 호시탐탐 여러 번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음료수나 가벼운 기프티콘 선물이 아닌 현물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대상 군은 평소 자기 일을 엄청 열심히 하는 분들이다. 그 덕분에 내가 항상 호사를 누리는 분들이 누가 있을까?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정말 항상 웃으며 모든 일에 엄청 적극적이신 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짜고짜 만원을 드리기엔 너무나 부끄럽고 내가 오히려 건방져 보일 것도 같아서 망설여진다.
두 번째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 거리를 항상 안전 운전해 주시는 출퇴근 버스기사님이 생각났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감히 현금을 드리지는 못하겠다. 혹여나 큰 용기를 내서 만원을 건네드렸다 해도 매일 또 버스를 타려면 왠지 부담스러워서 낯 뜨거울 것 같다. 그냥 무심한 지금의 관계를 넘나드는 게 겁이 난다.
도무지 쉽지가 않다. 연말이 며칠 안 남았는데 걱정이다. 그러던 중 불현듯 절호의 기회가 왔다. 휴일에 친정집에 갔다가 갑자기 근처 온천을 가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는 평소 목욕탕을 안 다녀서, 이 때다 싶어 제대로 세신을 받아보기로 했다. 역시나 세신 아주머님은 극락의 솜씨를 선보이셨고, 나는 K-세신사의 시원한 마무리 마사지 솜씨에 특히나 더 감동을 받았다. 물론 소심해서 표현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엄청 시원해요.!’를 외쳤지만 말이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었다. 본업에 최선을 다하는 분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만원 미션’을 실천하기에 제격이다. 다시 안 볼 것 같은 분이니 마음의 부담이 덜하고, 팁이 과하게 느껴질 것 같지 않은 딱 좋은 거리감이다. ‘그런데 무어라 말하며 만원을 드리지?’라고 고민하며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저 백만 년 만에 세신을 받아봤는데 틈새 마사지까지 너무나 최고였어요. 엄청 시원하게 피로를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라는 말은 역시 하지 못했다.)
“... 저기.. 이따 시원하게 음료수 하나 드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만원을 슬쩍 더 드렸다.
아주머님은 활짝 웃으며, “고마워요. 아가씨.”라고 말했다.
아가씨라니??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지며, 그렇게 제주댁 산타의 만원 미션은 성료가 되었다. 내가 기분이 더 좋았을까 아주머님의 기분이 더 좋았을까? 확실한 건 나는 그날 콧노래를 부르며 아가씨로 환생한 것 같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목욕탕을 나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성탄절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