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 내 미래다.’라는 말이 있다. 올해 나는 엄청난 큰 변화의 한해였다. 딱 1년 전 이맘때 ‘정지우’ 작가의 ‘심야의 글쓰기’ 모임을 신청하고, 선정이 되었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 정말 행복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매일같이 그의 에세이 포스팅을 오랜 기간 동안 보면서, 나에게는 많은 영향을 주는 ’ 글로‘ 자주 만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zoom으로 직접 마주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날아갈 듯 기뻤다. 그게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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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작가님과 우리 10명은 글로 진하게 겨울밤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했다. 비록 비대면 모임이지만, 그 무엇보다 진지했고, 늘 혼자였던 나에게 전국의 같은 결의 글 동기가 생긴 첫 순간이었다. 봄이 되어 정식 모임은 끝났지만, 남은 열기로 한두 달 글모임을 서로 지속했다. 그러다 현업으로 약간 소원해질 즈음 나는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정지우 작가 네트워크의 커다란 단톡방에서 기존 글모임에서 추가 인원을 모집한다는 공지에 손을 들어본 것이다. 이곳이 나의 두 번째 글동지를 만난 운명의 공간이다. 두 번째 모임 역시 다양한 나이와 직업군을 가진 재미있는 곳이었다. 이번엔 모두 여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모여 꾸준히 합평을 하다가 어느덧 서로의 글에 친해져 버렸다. 그러다 사고를 크게 쳤다.
그저 처음엔, 우리 일반인 6명이서 한번 진짜 책을 만들어보자는 작은 다짐의 날갯짓이었다. 주제는 '결혼‘이었다. 맨날 수의사, 말, 제주 등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만 편식하며 쓰다가 결혼에 대한 내 이야기를 쓰려니 정말 어려웠다. 자신 없는 내 안을 밖으로 드러내는 게 고역이었다.
내 결혼 인생을 돌아다보며 숱하게 후회스러웠고, 그냥 숨긴 채 덮고 생각을 멈추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썼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도 내보이기 어려워한 나의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글로 발행했더니 오히려 남들의 시선은 내 두려움과 핀트가 달랐다는 것에 놀라며, 내 글은 조금씩 편안하고 솔직해졌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진솔한 삶을 글로 나누며 우리는 더욱 친밀해졌고, 우리의 글감은 씨실과 날실로 잘 엮였다. (심지어 그림도 시도해 봤다.) 출판제안서를 여러 출판사에 뿌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며칠 전 마법처럼 출판사 한 곳에서 우리의 출판제안서를 긍정적으로 받아주셨다!!
아마 이번 겨울 역시 토 나오는 퇴고로 불태우며 내년의 첫 책을 위해 우리는 달릴 것 같다. 내 인생의 첫 책을 이 소중한 언니 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게 무엇보다 행복하고 값지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놀라운 사실이 있다. 정지우 작가님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라는 책을 함께 쓸 사람들을 원피스의 루피처럼 찾는 공지를 또 보게 된 것이다. 당연히 지원했다. 어린 시절 나는 ‘수의사가 본 수의사’라는 책을 보며 직업에 대한 궁금증을 크게 해소할 수 있었다. 정말 여러 번 정독하며 수의사 꿈을 남몰래 디테일하게 키워 주웠던 책이었다. 그런 나에게 ‘세상의 모든 직업’이라는 이름(가제)으로 탄생될 책은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다채로운 직업군 속에 나의 이야기가 들어가서, 누군가의 날갯짓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티끌 같은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15인 중 1인으로 선정 메일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이게 세 번째로 꾸려진 글 모임이다. 어느덧 교집합으로 아는 인연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더 반갑고 좋다. 새롭게 꾸려진 초고수들 사이에서, 전문가 선장님의 지휘 아래, 매주 내 글들이 난도질당할 생각을 하니 너무나 설렌다. 그리고 잘 다듬어진 후 세상에 나올 그 순간이 정말이지 기대된다.
요즘의 내 미리 감사일기장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다.
‘달지 와 언니들, 대박 나고 북토크도 너무 좋았습니다. 첫 책으로 우리는 평생의 언니 동생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보문고 가판대에 ’ 말수의사‘가 궁금해서 책을 집어든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미래에 ‘세상의 모든 직업’은 정말 소중한 책으로 남겨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찌 올 한 해 이리 좋은 일이 많은지, 눈 내리는 오늘 밤 조용히 생각해 본다. 정리해 보니 난 세 가지 정도를 실행한 것 같다.
첫째, 엄청 많이 들이댔다. 그래서 확률을 높였다. 이 내용은 주언규의 ‘슈퍼노멀’ 책에도 훨씬 디테일하게 언급되어 있다. 무수히 거절당했고, 무수히 떨어졌다. 올 초 나는 내 브런치북을 출판사 수십 군데에 제안했고 거절당했다. 브런치북 공식 프로젝트에도 올해까지 두 해 떨어졌다. 토스와 오뚜기 공모전도 떨어졌고, 한 플랫폼 연재 협상에서도 실패했다. 그럼에도 글의 양을 많이 늘렸다. 그러다 보니 한두 개 터지는 글도 생기게 되었다.
둘째, 미리 감사했다. 미리 감사일기를 쓰며, 작가가 된 나, 대형 서점에 눕혀져 있는 내 책, 첫 북토크의 설렘 등을 생생하고 진지하게 그렸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더 하게 되었다. 가령, sns를 모방해 보며 다각화하고, 오마이뉴스에 내 글을 연재해서 평가받아보고, 원고료의 소확행도 느껴보고, 세상의 반응도 지켜보며 체력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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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전문가에게 계속 다가갔다. 글로만 만나던 정지우 작가님을 어떻게든 만날 궁리를 했다. 글동지 모임은 내 일상에서 우선순위로 뺐다. 최대한 결석하지 않았고, 답변은 바로바로 했다. 비대면 모임은 삐끗하면 빛의 속도로 무너지는 것도 알기에, 노력을 해서 더 다가가려 했다. 근데 이건 서로 자석 같아서 어느 궤도부터는 노력 없이도 좋아서 서로서로 다가가고 있었다. 같은 결의 만남은 이래서 시너지가 생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역시나 만고 진리다. 그간 뿌려댄 씨앗들이 이제 가시적으로 싹을 하나씩 틔워보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 혼자서만 부끄럽게 몰래 뿌리던 씨앗을, 이제는 함께 밭을 갈고 응원하며 서로 단단하게 같이 갈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이 분들은 모두 지하에 있던 내 글을 일일이 다듬고 끌어올려준 감독님들이다. 내 손을 잡아주신 글 러버 동지들, 당신들이 내 미래를 이끌어 준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겠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인생이다.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중 ‘나비’
넘버
"아주 머나먼 나라에 아름다운 나비가 살았어요"
꽃과 나무 가득한 왕국에서
강물이 수풀 사이로 춤추며 흘렀죠
봄바람 따라 바닷가로
"계속해봐"
그 나비는 작은 가지에 내려앉아서
달려가는 강물 바라봤죠
혹시라도 바람에 휩쓸려 갈까 봐
잎사귀 뒤에 숨어 말했죠
나는 나비야 작고 중요치 않아
세상의 거대함 앞에 난 티끌일 뿐야
팔이 저릴 때 날개를 펴 춤추며 만족해
나는 나비야 중요치 않아
어느 날 그는 강물에게 물어봤죠
"저기요"
어디로 가나요
저 폭포 너머 세상에는 뭐가 있죠
나도 알려줘요
씩 웃으며 강물이 대답했죠
바람 따라서 바다로 간단다
넓고 푸른 저 바다 너도 좋아할 거야
너도 함께 떠나자
나는 나비죠 작고 중요치 않죠
세상의 거대함 앞에 난 티끌과 같죠
팔이 저릴 때 날개를 펴 춤추며 만족해
나는 나비야 중요치 않아
근데 나비는 바다를 꿈꿨죠
흰 파도 위로 날고 싶었죠
하지만 파도 같은 건 너무 위험하기에
바람에게 한번 더 말을 걸었죠
어떻게 그리 빨리 날 수 있죠
바람은 엄청난 얘길 해줬죠
내 몸의 힘은 공기의 흐름일 뿐
그 작은 날개로 시작 돼
네 날개로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네가 춤출 때 난 하늘 위로 날 수 있단다
네 몸으로 공기 흔들며 그 춤을 출 때면
네 날갯짓에 이 세상이 변해
나빈 팔을 펴서 나무 위의 가지를 떠나
날아 올라서 바다를 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