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인다

by 말자까


오랜 기간동안 하루하루중 짬을 내서 이어가던 일 중 두가지가 마무리 되어간다. 휴일 아침 남편을 보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도 볼일이 있어 회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장판이 뜨끈하고 밖은 비가 올 것 같아 노곤한 핑계로 그냥 주저앉아 강의 녹화를 했다. 어차피 오늘이 마감이어서 하기는 해야 했다.


작년 하반기 시간강사 자격으로 수업 두개를 얼떨결에 맡게 되었는데, 코로나 시국이라 비대면 강의로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노트북 하나 두고 나 혼자 떠드는게 너무나 오그라들고 수업시간을 어떻게 채우나 난감했다. 영상편집과 업로드 관련해서 이런저런 시도도 해봤으나, 어설프기 짝이 없어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또 강의 요청을 받게 되면서, 이번엔 기록을 좀 제대로 남겨보자 싶어서 개인 유튭 채널에 내 영상을 차곡이 쌓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종용하지 않았으나 그저 이번엔 조금 더 예를 갖춰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 책 한 권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귀한 파일인데, 차곡이 쌓아나 보자 싶어 요즘 너도 나도 하고 있는 개인 유튭을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초보자에겐 뭔들 안어려우리. 신기술 부적응자는 또 새로운 플랫폼에서 이리저리 몸빵으로 헤메다 보니, 벌써 중간고사가 끝났고 가까스로 조금전 9주차 영상을 업로드 했다. 그래도 뭔가 이렇게 천천히 적응하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이렇게 15주차, 30개의 영상이 저장될 내 유튭. 별건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나에겐 먼 훗날 올 상반기를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


두번째로는 성당. 작년 6월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새신자 교리수업을 들었다. 그간 코로나로 서너달 모임도 중단되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매주 화요일 저녁 나는 수업에 꼭 갔고, 이제 이 반에서 가장 오래된 개근상 수준의 손안가는 학생이다. 코로나로 인해 세례가 무한정 연기일 줄 알았는데, 감사하게도 5월에 세례식이 있다고 한다. 어제 저녁 교리선생님이 이제 다 왔다면서, 신부님 면담과 예행 연습 등을 막 설명해주시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이 곳에 발을 딛고, 매주 교리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미사도 약간은 적응되다보니 정말 나도 결국 세례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하고 이 여정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것이야 말로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 하는 정도의 미미한 시작이었는데, 코시국 덕분에 과감히 생략된 여러가지 친교 행사니 뭐니 하는 부담스러운 일정이 죄다 빠지면서 나에게는 오히려 끊을 놓지 않게 한 강력한 동기가 된 것 같다. 관계자분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쉽다고 그러시는데, 죄송하지만 나는 그 덕분에 이렇게 마지막 문까지 근근히 따라왔다는 점이 웃기다. 여튼 매번 지리하다가도 막판 되니깐 갑자기 더 착실하게 주일에도 미사에 가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생기는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때는 귀찮은 일과 같다가도, 막상 끝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곳 까지 걸어오니 갑자기 힘이 나서 귀찮은 마음을 다시금 동여맨다. 사막 끝 오아시스같은 큰 동력이요 동기부여가 되는 끝을 향해 그저 걸어간다. 오아시스에 가도 뭐 온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오르내리며 파도를 타며 사는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계속 이렇게 걷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겠다. 산 정상에서도, 하산할 때도 행복하겠지. 하지만 끝이 나오기 직전인 지금, 흐릿한 날씨 속에서 장판 따듯한 안방 속의 다소 지친 나에게 행복이 솜털처럼 다가오기에, 봉우리 직전 밑에서 산을 보고 있는 그 행복을 날리지 않고 그저 켜켜이 적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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