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soul)' 리뷰
(영화 소울(soul)의 스포 일부 포함)
여러모로 참 감동적인 주제를 가진 영화였고,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과 기발한 영상과 아이디어 모두 꽤나 멋진 사랑스러운 픽사의 최신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본지 몇 달이 지났는 데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감동적인 중요 장면이 아니고, 다소 마이너틱한 한 장면이다. 바로 22번이 스스로 길 잃은 영혼으로 자처하여 거대한 가루에 뒤덮인 채로 살아가는 모습과 그 가루 속에서 22번이 어떻게 성벽을 치고 있는지를 표현해주는 장면이다. 분명 영화의 클라이맥스나 주 포인트는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그 장면이 운전하다가도 생각나고, 자기 전에도 생각나고, 그냥 시시때때로 생각나는 게 이렇게 글로 좀 생각을 정리해보라는 신호 같기도 했다.
'22번'은 수천 년 동안 많은 멘토들이 동기를 부여해주려 노력하여도, 도무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영혼이다. 그런 22번에게 어쩌다 조와 함께 세상을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고, 드디어 그 그 뜨거운 동기가 뭔지 알 것 같은 찰나였는데, 화가 난 '조'는 그 마음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의견 충돌로 인한 말싸움을 했고,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조가 던진 한마디 때문에, 22번은 거대한 가루로 몸이 덮이며 스스로 길 잃은 영혼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간다.
사실 '조'는 22번에게 그렇게 막 송곳처럼 찌르는 악담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22번은 조의 화풀이에 가까운 말을 가공해서 해석했다. '맞아. 수천 년 동안 나는 원래 그런 아이였어. 나 따위는 원래 그런 의지가 없는 아이였어.'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성벽을 쌓기 시작한다. 그 성벽 안을 살펴보니, 그동안 조의 멘토였던 위인들인 테레사 수녀나 다른 위인들의 말 조차도 22번의 입장에서는 가공되어서 주눅 들게 하고 상처를 주는 말로 매일 공격하는 사람들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는 나만의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그 터널시야에서는 내 논리가 항상 정당하고 '남이 나에게 해를 가했기 때문'이라는 자기 방어로 무장되어서, 나는 무조건 올바른 사람이다. 아니 올바른 사람 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저 장면처럼 원래의 영혼은 보이지도 않은 채 검은 가루에 뒤덮여서 흡사 마비된 것처럼 같은 말만 무한 반복하며 터널 시야 속에서 평생을 그렇게 지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를 한다. 나 자신에게 작은 피 맺히게 하는 상해를 가하는 것조차 우리는 실행하기 엄청나게 어렵다. 내 마음 역시 남 때문에 다치게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내가 맞다고 하는 방어기제가 자동 작용하면서 결국 터널시야에 갇혀버리는 불상사에 이르고 만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어쩌면 모든 사람은 어떤 포인트에서 자신만의 터널시야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 어떤 포인트에서는 남보다 민감하고 꼬아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좀처럼 이해 못하는 타인의 행동도 어쩌면 그 사람만의 터널시야, 그 사람 만이 작용하는 방어기제 때문에 나에게 납득이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상황이나 언어 자체도, 22번 영혼처럼 가공된 형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더 왜곡되어 있지 않을까? 물론 모든 상황에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내가 맞다는 명제에 갇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22번 영혼은 마더 테레사의 조언까지도 칼날 같은 비난으로 왜곡하여 매일 자기 자신을 혼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맨날 혼나고 숨어서 울고 있는 22번 영혼에게 '조'는 화해의 손을 내민다. 사실 그 마음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아주는 것. '아 그랬구나' 하고 인정해주고 공감해주는 것. 그것 만으로 거대한 가루는 녹아내리고 여린 영혼이 드러났다.
저렇게 꽁꽁 방어를 하며 살아가는 타인들은 그냥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남이 인정해주든, 자기 자신이 인정해주든 그냥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터털 시야를 벗어 나기 위한 방법은, 일단 그 마음을 들어주고, '맞아 그랬구나. 너는 그럴만했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라는 손내밈이 필요할 뿐이다.
나 자신에게 오늘도 조금 더 다가가고 싶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여전히 쭈그러져 있는 영혼에게, 그래 너 참 힘든 거 이해한다. 너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라는 말을 옆에서 그냥 조곤히 해주며 가만히 손을 얹어주고 한참을 있고 싶다. 실컷 투정이 끝나고 마음이 진정되면 이제 터널에서 나와서 지금 내가 저렇게 두꺼운 가루 속에서 이끌리며 살아갔구나 하고 객관적인 인지를 하는 단계가 언젠가 오지 않을까.
22번 영혼이 터널시야에 갇힌 원인과 회복을 보면서, 누구나 가루 속에 덮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 자신' 말고는 알아주고 해결해줄 사람이 없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실 나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상 무의미하며, 그 상황 자체도 실은 방어기제로 인해 내가 더욱더 증폭시킨 것이기에 결국 저 안의 마음이 어떤지 잘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마음은 겉은 괴물인 채로 외롭게 평생 울며 지낼 것이다. 생각보다 저 마음속 영혼은 순수하다. 생각보다 저 마음속 영혼은 휘둘린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만의 영혼을 꼭 지켜야 한다.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필사적으로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런저런 상황에 처할 때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줘야만 한다. 그래야만 철벽 치고 터털 안에서만 마비된 채 남 탓하며 살아가는 나락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만히 두면 희안하게도 자꾸 끌려가니 순간순간의 세세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22번 영혼은 다시금 투명한 눈으로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영혼이 되어, 드디어 바라던 그 딱지를 가슴에 새기고선 저 지구를 향해 혼자서, 당당히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