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에 대한 칭송

by 말자까

평안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책임감이라는 말은 그다지 착 감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사실 나는 책임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눈을 떠야 출근을 할 수 있다. 아침을 차리고 상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빨래를 개야 한다. 장을 봐야 다음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환자에 대해서 매진해야 최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 상사나 후배에게는 그에 맞는 역할을 해줘야 원만하게 굴러갈 수 있다. 엑셀을 밟고 운전을 해야 이동이 가능하고, 이부자리를 봐주고 아이 로션까지 발라줘야 다음 날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망가지고 결국 더 일이 커지는 상황 때문에 나는 때로는 해치우는 듯한 책임감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책임감으로 꽁꽁 쌓인 차가운 느낌을 겹겹이 얹어야만 그 겹들이 숙성되어 빵이 되는 것 처럼 결국 나에게 평안을 안겨준다. 삶은 솔직히 고단하다. 그러니깐 삶은 무채색의 책임감으로 쌓아 올린 회색 성벽이고, 그것을 만들어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온기의 평안을 가지는 과정인 것만 같다. 어떤 날은 그 온기가 너무나 따뜻하고 좋아서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한 것 같지만, 실은 그 뒤에서 엄청나게 희생하고 뒷받치고 있는 무의식적인 책임감의 반복 아니면 결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고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하세요 라는 말이 삶의 목적이자 과정으로 습득되며 살고 있다. 당연히 행복은 좋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해야 하는 그 많은 애쓰는 과정들. 그들은 행복처럼 따뜻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기에 자꾸만 뒷전으로 밀리고 무시당하는 것만 같다. 그 책임감이라는 과정들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애쓰고 있다고 치켜세워줘야, 아니 칭송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묵묵히 제 할 일 해오는 나의 이면에 자리 잡은 책임감. 너는 지루한 존재가 아니고 내 삶에 있어서 목적이요 과정이 되는 소중한 아이란다. 네가 없으면 행복도 없고, 평안도 없어. 나의 순간순간을 이루는 가장 큰 근본이 책임감이라는 것. 그리고 성실이라는 것. 너희들이 심장 박동하듯이 끊임없이 움직여주어서 고맙고, 나에게 남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할당량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 또한 고맙다. 책임감 너희들이 평안이라는 장작불을 만들어줘서, 나는 오늘도 고단한 하루 순간순간 따뜻함을 만끽하는데 말이지 자꾸만 잊게 되는 것 같아 이렇게 글로 박제해주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고단함. 그러니깐 나는 그 고단한 회색 책임감을 고이 아끼고 너희들이 나를 둘러싸주는 여지없이 빡빡한 하루가 문득 감사하다. 내 심장이 뛰어서 감사하다고 평소에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내 책임감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어색하고 낯부끄럽지만 오늘은 솔직히 고백할게. 고맙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내 안의 책임감님.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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