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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pr 16. 2024

말생산자에게 전하는 월간 말톡 3월호

씨암말 산통


월간 말톡 (Horse Talk) 3월호  


2024년에는 제주지역 모든 말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말 생산농가에 ‘말톡(Horse Talk)’이라는 편지를 매달 띄우게 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출산 전후 어미말의 산통 관리에 대해서 농가에서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다.


비가 계속되니 시작되는 임신말의 수난  


제주의 3월은 망아지들이 곳곳에서 태어나느라 말 생산농가가 더없이 분주하다. 그 와중에 지난겨울부터 시작한 비는 끈질기게 오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비가 안 오는 날을 손꼽을 정도로 비가 잦았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변화 중, 생산농가에서 두드러진 것은 24년생 망아지를 배에 품은 임신말 또는 출산말의 산통이 매우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600kg가 넘는 암말은 340일 동안 한 마리의 새끼를 품는다. 망아지의 체중은 어미의 1/10이 되니, 태어날 때부터 60kg 정도 되는 데다가 양수와 태반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니, 막달의 임신말은 그야말로 배가 남산만 하다.


거대한 망아지를 품으려니 출산일이 가까워질수록 자궁은 거대해지고, 나머지 내장은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찌그러진 장기들이 음식물을 소화시키려고 나름 애쓰고 있는데, 비가 오다 보니 씨암말은 초지에 나가지를 못하게 되어서 자연스레 신선한 풀을 뜯으며 자연스레 운동할 시간마저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다가 망아지를 출산하고 나면 거대한 자궁이 순식간에 헐렁해지면서, 뱃속은 갑자기 공간이 남아돌게 된다. 말의 내장은 길이가 몹시 긴 데다가 굵기도 굵어졌다가 좁아졌다가 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내장이 말의 등 쪽에서 매달려져 있는 구조여서, 다른 동물에 비해 장기가 꼬이거나 뒤집히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출산 후에는 밤낮없이 젖을 빠는 망아지에게 젖을 줘야 하니 급여량은 늘어나게 되고, 비 오는 바깥에서 운동시키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원활한 소화가 되기 위한 과정이 녹록치 않아서 이번 시즌에는 내장이 꼬이거나 막혀서 응급 상황으로 동물병원에 내원하는 출산직후 어미말들이 많다. 올해는 특히 많다. 그렇다면 어미말의 산통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농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출산 전후 급여 관리


출산 전후 씨암말은 충분한 물 섭취가 필요하다. 평소 제공량 이상을 주어야 하며, 물통을 자주 확인해야 한다. 자동급수기인 경우 음수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의 깊게 살펴야 한다.


출산 전후 씨암말의 사료 급여는 농가마다 다르다. 출산 후의 암말은 대부분 좋은 식욕을 가지고 있다. 망아지를 낳고 빈 공간을 내장이 채우게 되는데 이때는 내장에 섬유질이 많은 물질로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유 중인 암말은 하루에 총 13kg 이상의 건초를 섭취하며 건초에는 섬유질이 많다. 이 때 좋은 품질의 건초를 사용하면 사료량을 줄일 수 있다.


급여하는 건초 및 사료는 분만 최소 2주 전부터 먹던 것과 동일한 것을 주는 것이 좋다. 씨암말의 단백질 요구량은 출산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따라서 양질의 고단백 건초나 부가적인 펠렛을 주는 것이 좋다. 알팔파나 알팔파그라스건초에는 단백질 함량이 많다.


운동과 배변 관찰


운동은 하루 15분 정도 최소 두세 번의 손 끌기를 하면 장운동에 도움이 되어서 음식물이 넘어가도록 도와주게 된다. 비가 많이 와서 운동을 시키기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자주 씨암말의 손 끌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날이 개면 방목지에 잠시 놓아서 신선한 풀을 먹는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좋다.


임신 말기나 출산 후에 생기기 쉬운 씨암말의 산통은 장의 위치가 돌아간 경우 (대결장 변위), 장이 꼬인 경우 (대결장 염전), 장에 변이 가득한 경우 (대결장 변비, 맹장 변비), 장에 가스가 찬 경우 (맹장의 가스산)가 빈번하다. 때로는 여러 종류의 산통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기도 하며, 말마다 통증의 정도가 다르다. 따라서, 어제저녁까지 멀쩡한 것 같이 보일 지라도 이미 경과가 진행되어 있을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발을 긁거나 구르는 등의 일반적인 산통 증상이 아니더라도, 누워있는 시간이 길다든지, 힘이 없는 것 같다든지 하는 행동의 변화, 또는 배변량이 적어지거나 묽은 설사를 자꾸 하는듯한 변화를 유의 깊게 관찰해서 이상 반응을 빠르게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말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살펴봐야 할 사항을 꼼꼼히 공유하고, 매일 점검하는 루틴을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새끼를 품고 낳느라 고생을 한 씨암말과, 말을 관리하느라 한해를 고생한 생산자들에게 망아지의 건강한 출산은 큰 기쁨이다. 하지만 출산 전후 어미말의 산통이 생겨서 동물병원을 오가는 생산자들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고난해 보인다. 농가에서는 “내가 너무 많이 먹였나?”, “깔짚을 너무 주워먹였나?” 자책하시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아무리 주의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산통은 어느 말에게나 생길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다만, 위에 적은 평범할 수 있을 듯한 관리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일상 속에서 유지하면서 관리하면, 생산농가의 막연한 걱정과 부담이 조금은 더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엄청나고 굉장한 묘법은 없다. 하지만 단순한 것부터 지키고 실행하는 것만으로, 그 누구보다 강력한 농가만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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