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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May 07. 2024

봄의 한가운데 - 1

생후 한 달 된 흑갈색 망아지가 우리 병원에 온 첫날 나는 사실 무심했다. 얼핏 봤을 때는 경미하게 아파 보였다. 한참 시도 때도 없이 낮밤으로 젖을 먹을 나이인데 젖을 빠는 게 갑자기 시원찮고 맹해졌다고 했다. 망아지는 주간 처치를 받고, 18시에는 집에 데려가서 밤시간에 분유를 주며 통원 치료를 며칠 지속하다가 치료를 종료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말이 갑자기 또 처진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내원한 망아지는 이번에는 잘 걷지도 못하고 고개를 잘 들지도 못했다. 급하게 검사를 다시 돌리니, 퇴원할 때 괜찮았던 수치들이 엄청나게 안 좋아져 있었다. 방심했던 나는 예민모드로 불이 켜졌다. 염증수치는 이틀 사이에 정상범위에서 다섯 배는 넘게 솟구쳐 있었다. 망아지는 젖을 스스로 빨기는커녕 분유를 삼키지도 못했다. 눈과 귀의 감각은 둔하고, 누운 상태에서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뱅뱅 돌며 발버둥만 쳤다.


나는 한숨만 더해졌다. 그날 밤부터 24시간 동안 수액을 걸고, 밤에도 분유를 매시간 먹여야 하겠다고 판단했다. 그건 누군가는 상주해야 한다는 소리였고, 주인은 야간 관리자 고용에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사실 우리 병원은 야간 관리자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불구하고 그날부터 바로 야간 관리 위탁을 맡아주는 분이 있었다. 갑자기 난리 치는 나 때문에 그날부터 얼떨결에 24시간 입원관리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진료를 하다 보면 퍼즐이 한 번에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말도 그랬다. 야간 치료 기간 동안 혈액검사의 염증 수치가 다행히 날마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게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다. 온 힘으로 야간관리자는 말을 돌보았다. 뱅글뱅글 무의식적으로 벽을 돌고, 전혀 먹지를 못했다. 어미말의 젖을 시간마다 짜서 젖병에 담아서 망아지에게 주고, 또 부족한 만큼 분유를 타서 먹이고, 수액줄이 엉키지 않도록 계속 잡아주는 것이 관리자의 일이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 망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며 증상은 호전이 없었다. 며칠밤을 샌 관리자는 낮밤이 바뀌어서 얼굴이 점점 노래지고 있었다. 관리비는 점점 누적되고, 전례 없던 야간 돌봄 운영에 사람들도 지쳐갔다. 그때부터였다. 점점 내가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이 말을 언제까지 입원시켜야 하나?‘ ’진즉에 포기하는 게 맞았나?‘ ’ 내가 모든 말을 책임질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주인을 희망고문하나?' '가망도 없는데 너무 여러 사람 낮밤으로 고생만 시키고 돈만 들게 하나?' 이제는 나 스스로가 나를 더 거세게 휘둘렀다. 혈액수치 하나 빼고는 온갖 정성 대비 모든 게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이것도 인력을 갈아 넣으며 밤샘 약물처치로 이렇게 연명하는 거지, 이게 없다면 과연 스스로 버틸 수 있을지 보장도 없었다.


그 압박은 결국 나를 두 손 들게 만들었다. 나는 주인을 소환했다. 마트에서 오늘 필요한 분유 한통을 사다가 내 전화에 달려온 주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이 없어졌다. 나는 시각과 청각 등 신경장애증상이 전혀 돌아오지 않고, 24시간 초집중 치료를 여러 날 했음에도 여전히 엄마도 못 찾고 스스로 먹지 못해서, 관리가 없다면 회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했다.


내 판정에 주인은 침묵했다. 그러더니 주인은 이야기했다. 그러면 오늘밤만 지금처럼 삼교대로 야간을 똑같이 밤샘수액 맞히며 고생해 주시고, 내일 저녁까지 치료 다 끝나면 그때 데리고 돌아가겠다. 내가 집에서 며칠 더 분유를 억지로라도 먹여보고 말이 정말 안 되겠으면 거기서 외부수의사 통해서 안락사 조치 하겠다고 했다. 바로 포기하지 않고 이틀만 더 관리해 달라는 비장한 주인에게 나는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야간관리 실장님은 마지막날 정말 정성을 다해 분유를 매시간 흘려 넣어 주었고, 나는 비틀거리는 앙상한 망아지를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보냈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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