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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May 07. 2024

봄의 한가운데 - 2

망아지를 포기하고 집으로 보냈지만 여전히 생사가 궁금했다. 주인이 밤에 여전히 먹여주는지, 어미를 못 따라다니고 혼자 벽만 뱅뱅 도는지 너무 궁금해서 퇴원 3일 후, 팔로업 전화를 걸어보았다. 버튼을 누르기 전 혹시나 비보가 전달될까 봐, 괜히 주인 마음을 내가 긁을까 봐 걱정되었다.


“말이 좀 괜찮은가 해서 연락드렸어요 마주님.”

“아. 아직 잘 있어요. 어쩔 때는 젖도 스스로 빠는 것 같아. “


깜짝 놀랐다. 주인은 긍정적인 분이어서, 젖을 물고만 있는걸 혹시 스스로 빤다고 생각하는지 살짝 의심이 될 만큼, 산송장 같았던 망아지가 며칠 만에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이 놀라웠다. 나는 그날 점심 상태점검을 핑계로 왕진을 갔다. 말 상태를 직접 보고, 밤새 내내 관리해 준 입원실장님께도 영상을 찍어 보여주고 싶었다.


주인의 말은 맞았다. 여전히 우리가 매일 처방하는 조제 수액을 하루종일 충실히 맞히며, 낮밤으로 젖을 짜서 먹인 결과 말은 정말 활력이 제법 나아졌고, 한참 걸리지만 젖을 스스로 찾아서 물기도 했다.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이나, 최악의 고비는 넘긴 것으로 보였다. 며칠 전 압박감에 휘둘려 말을 포기하라고 평가했던 나 자신이 너무 미안했다. ”마주님, 이 말은 결국 마주님이 살렸네요. 감사합니다. “


마주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옆의 목장주인도 어서 처리하라고 맨날 뭐라 하는데, 그래도 살아있는 걸 어떻게 죽여. 그냥 낮밤으로 젖을 짜서 먹였지.”


그 이후 나는 반성을 정말 많이 했다. 수의사의 냉정한 예후 판단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원래 나는 생의 확률이 낮아도, 언제까지 돈과 시간을 퍼부어야 하는지 가늠이 안된다 해도, 뭐라도 해보고 싶은 류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반려동물이 아니고 경제적 동물인 말에게, 가치 결정을 위한 적정선을 주인에게 제시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고, 나도 그에 맞는 적당한 사람이 돼 가고 있었다. 시간 끌고 치료 연장하다 말이 죽으면 돈도 안 내려는 주인들까지 여럿 겪으며, 나는 지금 이 분의 속마음을 살펴보지 못했다.


며칠 후 주인은 오늘에야 망아지 출생등록 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수액을 처방받으러 들르셨다. “망아지는 제가 아니고 마주님이 살린 거예요. 감사합니다. 마주님.”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사실 이 녀석은 갈 길이 너무 많다. 또한 성장하더라도 제 역할을 할지 지금은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망아지 편에 서주신 마주의 자세에 나는 큰 배움을 얻었고, 나는 다음 번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백명중에 한 명은 나 같은 인간이 있어도 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망아지를 포기하며 내보냈던 그날, 옆 방에 막 입원한 또 다른 말의 미래를 바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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