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서정적인 극이 있을까. 덕극으로 이미 뮤덕들에게 유명해서 벌써 4연째 올리고 있는 이 쓸쓸한 극과 이제야 인연이 닿아서 보게 되었다. 자첫만으로 내가 이 극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소문대로 덕들이 회전을 돌만한 요소가 무궁구진하다는 느낌이 보는 내내 강렬하게 들어왔다.
글로서 서로를 깊숙히 이해하고 겉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스토리는 뮤지컬 '팬레터'를 생각나게 했다. 또 둘의 엇갈림과 비극은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도 생각나게 했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잠깐 나오는 전혜린이나 이중섭 같은 예술가들 역시 생각났다. 가장 보고 싶고 듣고 싶었던 넘버 '취한배' 뿐만 아니라 다른 넘버들도 아름답게 일렁이는 넘버가 많았고, 무대도 랭보의 착장도 그냥 어린왕자인 듯 충분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온전히 이해를 받는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참 와닿았다. 랭보는 외로워한다. 프랑스 시인 문단을 철저히 비웃는 랭보는 어차피 그들과 리그가 다른, 천재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랭보는 한없이 외로웠다.
최근 이런 말을 들었다.
'사람은 잘나질 수록 주위에서 시기 질투 하기에 외로워진다. 그것은 비례 관계다. 혹시 외롭지 않다면, 이미 주위와 같은 무리가 된 것이니 오히려 그것에 긴장해야 한다. 시기 질투를 충분히 못받으면 오히려 뭔가 재미난 일을 덜 하고 있는 것이다.'
랭보가 추구하는 시, 불꽃같은 삶, 랭보가 추구하는 시대를 앞서간 순수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필연적인 외로움이었다. 그걸 해소해주는 게 베를렌느였으니, 결국 파국일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서로 만나지 않고, 랭보는 한없이 외롭기만 했으면 어땠을까? 철저히 고립되고 외면받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다른 리그에 있으니, 앉은뱅이같은 너희들이 뭐라 지껄여도 상관 없다고 했을까? 좋은 작품을 더 오래 만들 수 있었을까?
세상의 고독한 천재들, 그들의 잘남 덕분에 세상은 한층 더 깊어진다. 외로운 천재가 있다면, 네가 특출나게 다를 만큼 특별한 것이니, 그게 바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