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에 관하여
#1. 죽음에 관하여
난 어렸을 적부터 죽음에 관해 생각을 참 많이 하는 아이였다. 좀 애늙은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가 죽을 때 뭘 후회할까?' '뭘 후련해할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자주 던진다. 그런데 나는 이 뮤지컬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시놉시스에서 '달에 착륙하고 온 세계가 그들을 지켜볼 때, 달의 뒤편에서 사령선에 혼자 남아 있던 마이클 콜린스의 인생 이야기라고 했기에, 주된 내용이 달탐사에 파생된 스토리인 줄 알았다. '내 발자국이 달 위에 남겨지지 않아도 난 괜찮아'라는 메인 넘버 소절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뽑아낼 역경 스토리가 충분히 흥미진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뮤지컬의 시작과 끝은 놀랍게도 임종 직전과 직후이며, 주된 스토리는 사실상 삶과 죽음 사이 어디에서 시작되되는 회상이 메인이다.
예전에 어떤 티브이 프로에서 봤던 선명한 인터뷰가 하나 있다. 명품백을 너무 좋아해서 평생 명품백만 사던 할머니 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임종 직전에 뭐라고 말했을까? 놀랍게도 할머니는 임종 직전에 '하나 더 살걸. 비싸다고 안 사고 참았던 게 아쉽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난 깜짝 놀랐다. 그 할머니는 소유의 기쁨이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큰 행복이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게 인생을 후회없이 제대로 산거다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것'에 취해 사실, '사람'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지 크게 품지 않았다.
마이클 콜린스는 그 누구보다 달을 추앙하던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든든한 안정감으로서, 청년 시절에는 뚜렷한 이상향으로서 그저 달이 좋았던 사람으로 살아왔다. 심지어, 연인을 만나고 가족을 만들면서도 가족 사랑과 별개로 우주비행사가 평생의 꿈이었다. 그런데 마이클은 죽을 때 뭐라고 말했을까? 마이클은 달을 밟지 못해서 속상하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부인 패트리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까지의 추억을 자세히 기렸고, 가족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하는게 임종 직전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사실 이건, 참 보편 타탕한 진리다. 그런데, 난 왜, 우린 왜 자꾸 그것을 잊고 당연시하며 무시할까? 왜 나는 현재 번쩍이는 것들 - 부, 명예, 안정감, 성취, 소유 - 을 계속 더 가지고 싶어할까?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가져아 한다는 명분으로 살다 보면 결국 순위에 밀리는 건 가족이다. 물론 이 뮤지컬 속 콜린스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미국영웅 스토리는 주로 가족사진을 보며 전쟁통을 버티고, 괴물을 물리치며 살아남는다. 하지만, 한국 정서에서는 사랑을 위해 일을 한다기보단, 일만 하다 보니 사랑할 시간이 없었다는 스토리가 더 익숙하다. 어쩌면 우리가 유독 비교에 민감해서 보이는 것에 더 치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하루종일 일만 하기에도 밥 먹고 살기 힘든 가장이 거친 세대를 거쳐오며 그 이미지가 박힌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내가 갑자기 뮤지컬 주인공처럼 갑자기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나는 그 명품백 할머니처럼 내가 못 가진 번쩍임을 아쉬워할까? 아니면 콜린스 씨처럼 이제 달에서 부인을 드디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까? 둘의 인생은 사실 다 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 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갑자기 그 생과 사 중간의 그레이존에 막상 위치한다면, 갑자기 남편에게, 아이에게, 내 부모님에게 다 표현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클 것 같다. 아무래도 살면서 내가 원하는 자산을 얻지 못하고, 원하는 경험을 다 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보다는, 나 없이 살아갈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클 것 같다. 풀소유를 누구보다도 욕망하는 나인데도 말이다.
이 극은 소극장 1인 뮤지컬의 특강점으로, 그 감정선과 서정적인 넘버로 나를 납득시킨 작지만 강한 뮤지컬이었다. 평소에 미국영웅스토리에 감기지 않는 나를, 이 극의 주인공은 캐릭터의 세밀한 감정과 목소리에 담긴 서사를 통해서, 콜린스의 진짜 감정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게 만들었다. 왜 가족사진을 품으며 삶을 버티는지, 그야말로 뭣이 중한지를 그 단단한 눈빛으로 나에게 이해시켜 줬다. 가족도 사랑하고, 동료도 사랑하고, 일도 사랑하는 우리 다정남 마이클의 완벽한 성정은, 사실 내가 덕질하는 배우가 연기했기에 더 쉽게 납득이 된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나도 미국 전쟁영화를 봐도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보게 될 것 같다. 또, 카톡 프사나 휴대폰 배경화면에 가족을 품고 사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야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며, 한동안 품었던 내 가치관이 바뀌는 아주 큰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죽음에 이를 때, 이왕이면 가족과 아이들을 원 없이 사랑해 주었고, 사랑받아서 고마웠다는 엔딩으로 가져가고 싶다 (미국영웅이 아닐지라도). 내가 과연 달이 예쁘다고만 말하는 연인을 품어주는 패트리샤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죽기 전에 후회하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지는 않기 위해, 혹은 고독사 당하지 않기 위해, 다시금 오늘을 똑바로 살기 위해 정신을 차려본다. '뭣이 중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