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분에 관하여
어제는 성당에서 영성체 의식때 신부님을 도와주시는 수녀님에게 왠지 모르게 눈이 갔다. 성당은 신부님의 필두지휘 하에 모든게 이루어지며, 모든 말씀은 신부님이 전해주신다. 수녀님은 보통 가장 뒤에 앉아 계시고, 늘 조용한 뒷모습만 보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우리 수녀님의 얼굴도 목소리도 어떤지 한번도 살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뮤지컬의 비하인드더문의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는 세계 최조 달 탐사로 가장 떠들썩한 그 우주비행사 팀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달을 밟지 못하고 달의 뒷편 사령선 안에 있었다. 온 세계는 최초로 달을 밟은 닐 암스트롱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하지만, 마이클은 줄곧 '난 달을 밟지 않아도 괜찮다' 라고 말한다. 사실 극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게, 마치 정신승리 같이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인줄 알았다. 분명히 아이 때부터 한평생 지금까지 우주비행사가 되어서 달에 가는게 꿈이었는데, 코앞에서 좌절되었으니 말이다.
그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성취지향적 사람이었고, 오랜 시간동안 내 분야에서, 여자 최초로 말 수술을 할 수 있는 '술자'가 되고 싶었던 꿈을 참 오래 꾸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처음에 무너졌을 때에는 좌절감이 꽤나 컸다. 나는 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대한 진통을 꽤 오랫동안 뼈아프게 겪었다. 마이클은 닐에게, 달 탐사대 명단에 자기가 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정말 감정이 북받쳐올만큼 기뻐하다가, 본인은 사실 달을 밟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적잖이 당황한다.
하지만, 마이클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은 원래 달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찮고, 또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기에 달탐사대 팀에 합류하겠다고 결정한다. 순간의 좌절에서 바로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그 마이클이 참 신기해 보였다. 아니 한평생 원하는 일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가 되는 것이 참 의아했다. 엑스칼리버를 뽑지 못하는 멜레아강 왕자는 이후 흑화하여 아더왕과 싸운다. 두번째로 달을 밟은 버즈 역시 스포트라이트가 닐에게만 오는 상황에 대해 크게 힘들어한다. 하물며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도 아이들은 크게 좌절하고 힘들어한다. 그런데, 마이클은 아니었다. 그는, 감정의 폭발이나 동요 없이 바로 자신의 업무를 파악하고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기로 한다. 나는 원래 달을 보는 것 만으로도 좋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과 함께.
오늘은 성탄미사 내내 뒷자리에 앉아 계시다가 영성체 의식을 도와주시러 아주 조용히 제단 앞으로 걸어오시는 수녀님에게 유난히 내 눈길이 머물렀고, 불현듯 달의 뒷편에만 있었던 마이클이 생각났다. 수녀님은, 과연 스포트라이트를 중요시 했을까? 짐작컨데, 신과 함께 하는 본인의 여정을 충실이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드러나지 않는 위치라고 억울하거나 속상해 하실 리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규정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더 인정해줘서? 더 돋보여서? 내가 주인공 같아서? 그런 기대와 상상 때문에 아마도 보여지는 것에 더 신경쓰며 꿈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가만이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인정 욕구는 결국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은 가치인 것이다. 내 스스로가 현재의 내 본분에 큰 의의를 두고, 거기에 가치를 둔다면, 그 누가 그걸 가지고 평가하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 담대함이 그 시절의 나는 없었다. 마이클의 담대함의 가장 큰 뿌리는 아마도 가족의 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말도 안되는 시련이 항상 다가온다. 그 때 정말로 필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편이라고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도저히 삶을 멈출 수가 없다. 그게 혈연을 나누는 가족일 수도, 나의 배우자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타인이라도 충분히 깊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일은 없으며, 본분을 단단하게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품있는 멋진 어른이다, 또한, 그 힘의 원천은 다름아닌 서로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참 따뜻하고 마음이 울리는 좋은 극이다. 이 겨울, 내 삶을 한번 돌아보고 싶다면, 모든 감정을 초 근방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1인 뮤지컬의 정수를 보고싶다면, 바로 달의 뒷편, 비하인드더문으로 오시면 됩니다.
* 이 글은 대가성 제공없이, 제가 그냥 너무 좋아서 쓴 글임을 밝힙니다.
https://mobileticket.interpark.com/goods/25013716?app_tapbar_state=hide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5549
https://youtu.be/0uPwXk0smik?si=TiL6FfKa7wYLQYD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