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데없이 나에게 안긴 연극
극에 대한 정보가 단 하나도 없이, 우연한 행운으로 엘송을 보게 되었다. 서울 일정 중 하나가 갑자기 비게 되면서 시간이 났던 어느 몹시 추운 날 오후였다. 그날 검색을 하다가, 누군가가 극을 못 보게 되어서 공연 3시간쯤 전에 표를 양도하는 글을 내가 본 것 자체가 정말 기가 막힌 로또 같은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이 연극은 10주년 기념으로 이미 유명한 극이고, 그날이 첫 공으로 모두 매진이 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도 나는 극에 대한 시놉을 잘 읽지 않고 극을 보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지방러에게 흔치 않은 계획에 없던 극을 갑자기 보게 되면서, 그야말로 온전한 백지 그 상태 그대로 극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 뮤지컬보다는 연극에 다소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과연 러닝 타임동안 잘 집중할 수 있을지 긴장이 되기도 했다.
꽤 일찍 공연장에 들어섰는데,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왠지 10주년 첫 공을 엄청나게 기다린 n년차 엘송 덕후들의 집합 같은 포스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코끼리 인형이 전시된 벽과, 캐보를 슬쩍 찍고 창에 붙은 출연진들 얼굴을 살펴보며 신규 유입이 티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눈알만 열심히 굴렸다. 첫공 전석 매진에 걸맞게 로비는 점점 붐비기 시작했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 보니 양도받은 자리가 놀랍게도 너무 좋은 앞자리 중앙 쪽에 위치해 있었다. 무대 왼쪽에는 큰 창문이 있고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무대 가운데에는 침대가 하나 위치해 있었다. 조용한 음악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고, 역시나 덕덕한 느낌의 예상 그대로 그 많은 객석은 아주 조용하고도 일사불란하게 촥촥 채워졌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날의 멤버는 마이클 이재균 배우, 그린버그 정원조 배우, 피터슨 정재은 배우, 그리고 안소니 였다. 쥐 죽은 듯한 암전 후 극은 갑자기 시작되었고- 진짜 극의 전개 상 난데없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내 자리가 워낙 앞자리여서, 나는 숨도 못 쉰 채로 극에 빨려 들어갔다. 일단, 이재균 배우의 열연이 정말 말도 못 했고, 그 에너지는 압도당할 만큼 강했다. 공연을 본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이 배우의 그 눈빛을 잊지 못하겠다. 그리고 얼마 전, 이재균 배우의 인터뷰를 보고 얼마나 이 극에 애정이 깊은지 알게 되어서 그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이 로또가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공연이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 나는,,, 백지상태였던 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큰 망치를 얻어맞았다. 얼얼했다. 문제는 극이 끝나고 다시 지방에 내려와야 하는 나의 일정이었다. 엘송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이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이 극을 볼지 기약도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순간의 예술이라는 이 아름다운 연극이 곧 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이 더없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쩌다 이 극을 보게 되었을까. 이 극은 어쩌다 나에게 오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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