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에 관하여
엘송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극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다시 한번 극의 처음부터 시작된 모든 대사를 다시 곱씹으며 아! 그런 은유가 있었구나 하는 류의 대 반전극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공개된 넘버 몇 개라도 다시 들어볼 수 있고, 커튼콜 영상이라도 보며 추억할 수 있지, 이놈의 연극은 영상정보가 너무나 희소하다. 그러니,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그 순간에 사라진 그 많은 대사와 은유를 나는 아쉽게도 다 기억할 수가 없다. 나무위키를 뒤져보니 이 극은 2002년 캐나다에서 연극으로 초연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영화로 개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0주년이나 이어갈 정도로 사랑받는 극이다 보니 유튜브에 아주 조금씩 공연 일부 클립이 있기는 했다. 가장 아끼는 과자를 주워 먹듯 그 오래된 영상클립을 슬쩍 열어보고 또 보았다. 그 짧은 영상을 볼 때마다 눈물이 차고, 마음이 요동쳤다.
나는 원래 잘 낚이는 주제가 있다. 그건 '외로움', '상처', '이해', '사랑', '결핍' 같은 류의 코드이다. 그런데 엘송은 그야말로 그 집합체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연극에 감길 수밖에 없었다.
극의 초반부터 나는 이 극이 일종의 고도의 추리극이라고 생각해서, 극의 마지막까지 의심의 끝을 놓지 않느라고 머릿속을 나름 굴리고 있었다. 사실 자첫때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극의 의도된 플롯이다. 그런데 공연 내내 내 양옆과 뒤쪽에서 훌쩍훌쩍하는 소리가 약간씩 들리는 게 좀 의아하긴 했다. 누가 봐도, 지금 팽팽한 추리싸움을 하는 주인공들인데 어디가 슬픈 건지 내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공연 마지막 즈음에야 나는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우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피터슨의 '아가야' 한마디에 나는 그제야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극은 끝나버렸다. 이 충격과 먹먹함을 가진 채로 공연장을 쓸쓸히 나서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내가 이 극과 어벙벙하게 이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안소니(코끼리 인형)가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고, 나는 영화 엘리펀트 송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이재균 배우의 그 눈빛과 그 공연장의 공기에 대한 갈망이 상쇄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내 발걸음은 다시 예사 3관으로 향했다. 이번 생은 아무래도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자둘을 할 땐 왠지 손수건을 꼭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역시나 나 역시 그 선배덕후들처럼, 공연 중간부터 눈물이 터지기 시작해서, 공연 마지막에는 기력이 다해서 거의 기어서 나온 것 같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온전한 사랑을 받아본 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역시 잘 모르겠다. 누구라도 결핍은 있고, 누구에게도 마이클의 시절은 있다. 이 극은 책임감과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참 아픈 극이다. 다소 극적인 방법이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이 극을 이토록 사랑하고, 이렇게 10주년이 될 정도로 팬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그저 귀여운 안소니 인형이, 마이클이 그토록 찾던 관심과 사랑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하나의 상징이자 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 다음 글부터는 속 시원하게 마음을 적느라, 줄거리 강 스포가 있음을 예고합니다. 따라서, 이 극을 보지 않은 분은, 인생 유일한 백지상태의 '자첫'의 경험을 위해서 다음 글을 읽지 마시길 권유드립니다. 저와 이입 코드가 비슷하다면 그냥 믿고, 때마침 지금 공연 중인 이 극을 보러 지금 대학로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
*아, 이 글 역시 대가성 제공이 전혀 없는, 어느 한 뮤덕구가 지가 좋아서 지가 영업하는 글임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