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봄에 세례를 받은 후 나는 방목된 말처럼 온전한 자유 인간이었다. 성당에 아는 분도 없고, 그 누가 강권하지도 않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한번 안 가기 시작하면 1년간 교리만 듣고선 바로 흐지부지 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에 주일에 미사를 웬만하면 가려고 신경을 써왔다. 그래도 여러 번 빼먹기도 했고 가도 배고프거나 졸릴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다녀오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 그거 하나로 근근이 미사를 드렸다. 그런데 12월이 되니 성전에 예쁜 보라색 초가 생기더니 막 초를 하나씩 켜가며 대림 주간이라고 하셨다. 뭔진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예수님 탄생을 모두가 이렇게 엄청나게 기다리고 준비하는구나 싶어서 성탄미사는 한번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같이 한번 가보자고, 선물을 줄 거라고, 1년에 한 번인데 한번 가보자고 유혹해 봤는데 너무 고맙게도 착한 딸이 처음으로 따라가 주었다. 딸에게는 첫 미사. 나에게는 첫 성탄미사. 어설펐던 나는 사실 미사 시간도 원래대로 인 줄 알았으나, 30분 늦게 시작한 데다 시간도 엄청 길어서 당황했다. 일요일은 근무일이라 주로 새벽이나 저녁만 다니다 보니 많은 사람을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시작 전 성가대 분들과 이름 모를(?) 많은 관계자 분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시고 준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소등을 하더니 정적 속에서 트리가 켜지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분들이 입장했고, 구유 예절부터 본 미사의 모든 예식이 상당히 화려하고 길어졌다. 거기에 캐럴인가 보다 싶었던 노래가 웅장하게 불려지고 마지막까지도 정말이지 화려한 축제 같았다. 덕분에 딸도 다행히 집중을 잘해주었고, 어플 보며 제법 노래도 따라 하려고 애써 주었다. 영성체 때에는 신부님이 머리에 손을 얹어주시는 것에 머리 안 감았다며 부끄러워하더니, 나에게 '빵 맛있어?'라고 속삭이는 아이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나보다 백만 배 멋진 예쁜 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모두가 축복하고 축하하는 날이었구나. 매번 성탄절을 맞았지만 사실 정말 뭐인지 모른 채 그저 트리 달고 캐럴 나오는 날이구나 산타클로스 오시는 날이구나 하고 살아왔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들에 섞여서 나도 같이 축하와 감사를 드리게 된 첫 성탄절 미사에 대한 소감을 기록하고 싶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온갖 고난과 죽음과 멸시를 경험하게 된 분. 굳이 그렇게 안 내려 오셔도 되는데, 동병상련, 그러니깐 똑같이 되어봐야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고 싶어서 기꺼이 내려오신 분. 그 아기 예수님이 구유 속에서 탄생하신 날이다. 축하할 일이 맞다. 아직 어설프지만 이제 조금은 신자로서의 삶이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의 삶 속에도 오늘의 엄마 따라 얼떨결에 온 첫 미사 예식이, 무언가 뚜렷한 기억의 어느 날로 남겨졌으면 좋겠다.
p.s. 아이가 받은 선물은 머랭 쿠키였는데, 안타깝게도 먹고 목에 갑자기 알러지가 와서 밤에 한차례 소동이 있었던 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잠을 잘 이룰 수 있게 되었던 2021년 크리스마스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