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된다고 강추위가 올 거라고 하는데, 그로부터 이틀 전인 오늘 창밖의 햇살은 너무나 여유로워서 내 피부가 나른해지고 밖의 동백나무는 만개한 꽃들로 가득 차 초록보다 빨강이 더 많이 보여 산세베리아처럼 크리스마스랑 나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눈바람이 치든 말든 나는 오늘 만개하며 내 갈 길 갈테다 자랑하는 듯한 꽃무리의 자태가 참 예쁘다. 논문 준비로 극도로 긴장했던 지난달. 그리고 달려왔던 올 한 해. 그리고 졸업의 압박의 무게를 지었던 여러 해를 지내오다가 이제야 그 끝을 보니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가 멍하니 쉬는 것처럼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쉰 것 같은데 몇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온몸으로 쉬어갈 타이밍이라 외쳤었던 것 같다. 리비전 메일의 끝없는 전송이 이제는 안 오고, 기한의 압박이 나를 재촉하는 일이 없으니 나는 요즘 MS 워드를 빛의 속도로 멀리 하고 있다.
그간 신경 못썼던 몸뚱이나 보살펴 주자고, 오랜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이쯤 되면 미적인 목적이라기보다는 일할 때 그저 덜 다치고, 남한테 폐 안 끼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라 생각된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힘을 쓸 일이 많다 보니, 나 때문에 남자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팔운동, 코어 운동, 허벅지 운동 위주로 몸을 좀 (많이) 단련해 놓아야, 바닥 한번 더 닦을 힘이 나고, 말이 갑자기 나를 공격해도 뼈는 추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금 유튜브 속 꾸준한 그녀들과 조우했다. 그 인플루언서들은 나를 당연히 모르겠지만 나는 그분들을 몇 년간보다 보니 이제 친하다고 생각할 지경이다. 내가 온갖 샛길을 넘나들고 뒤구르고 헤엄치고 생난리를 쳐도 그분들은 한결같이 자기 갈 길을 가는 게 참 경외롭다. 저쯤 되면 숨 쉬듯이 운동이 될까?
신경 못썼던 집에도 신경을 쓰고 싶었다. 베란다도 치우고 옷도 정리하고 집구석을 치우고 싶었으.... 나, 역시 청소에는 몸이 전혀 동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출근과 밥 차림과 빨래와 기본적 청소 외에는, 나는 그저 누워 있었다. 누워서 하릴없는 휴대폰 들여다보기를 하며 겨울잠 자듯이 지냈다. 아무에게도 연락이 안 오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이제 성인이다 보니 누워만 있는 나에게 등짝 때리는 사람도 없고, 그저 나 스스로 이러다 때 되면 말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 아예 작정하고 폐인이 되어보았다. 집구석은 깨끗해지지 않았고, 나는 장판 속에서 녹아들어 가는 아주 안락한 구조였으며 나는 사실 이런 것에 최적화된 성향이 맞는 모태 게으름쟁이 사람임을 알기에 청소 안할 줄 알았다. 노래도 듣고 영상도 보고 댓글도 보고 유튭도 보고 주식 창도 보고 부동산도 보고 아무튼 누워서도 뇌를 굴릴 곳은 너무나 많기에 하루가 너무나 빨리 잘도 갔다. 하루가 뭐야 며칠이 그냥 점프하듯이 지나갔다. 그렇게 동면은 지속되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12월 달력이 끝이 날 시점이 되어가고,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사실 그러기엔 며칠 남지 않은 오늘이다. 하마터면 성탄절까지 동면할 뻔했다. 가까스로 일어나서 일단은 이렇게 글을 쓰니 동면이 깨어나는 것 같다. 이제 슬슬 논문 도서관 업로드와 인쇄, 투고 절차를 해야 한다. 아직 끝까지 끝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12월까지 차질 없이 잘 마무리하고, 호랑이 해에 그토록 길고 애썼던 졸업장을 경건하게 받아볼 준비를 해야겠다. 아마도 내년은 부서에서도 인사이동으로, 올해와 다른 역할을 가져야 하는 해가 될 것 같다. 조금 더 정갈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충분히 잘 쉬었으니 내년에는 어디에 집중하며 살아갈지 잘 생각해볼 테다. 그렇게 정초를 지내다 보면 어느새 구정이 올 테고, 또다시 구정이 새해다 생각하며 수정된 버전의 한 해를 다시금 만들어서, 뜨겁게 또 겸손하게 내 역량을 하며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아보고 싶다.
올해는 졸업과 세례라는 굵직한 선물이 있었던 한 해였다. 내년에는 하고 싶었던 일을 능력 있게 해내고 대응할 수 있는 한 해. 그 꿈을 감사하게 펼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가정의 건강과 화목, 자산의 증식을 희망한다. 적다 보니 희망이 몹시 원대하다. 욕심이 과하다 할 수 있겠으나, 일단 목표는 크게 잡는 것이라 하였다.
wintering을 거친 나는 이제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힘은 다시 찼다. 이제 그저 이끄시는 대로 성실히 걸어볼 테다. 나에게 주어주신 꾸준함을 동력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