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로 접어든 아들을 접하는건 두렵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재미있을 때도 있다. 가령 어제같은 날이다.
요즘은 안그래도 짧았던 대화가 더욱 극도로 단답형으로 변해가면서, 도대체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정말로 궁금하여 죽기 직전이다가 결국 내가 자포자기하며 그저 그렇게 살던 차였다. 그러던 중 어제는 왠일로 아들이 저녁에 자기 전에 잠이 안왔는지 방으로 슬쩍 오더니 나한테 말폭탄이 터졌다.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렸던 심심한 낚시꾼에게 드디어 입질이 들어온 것이다!
분명 나에게 어린 아이였던 아들이 오랫만에 던진 이야기는 놀랍게도 참으로 심오하고 다양했다.
가령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전쟁, 주식, 자존감, 삶의 존재의 이유 등등 참으로 다양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불꺼진 방에서 도란도란 나누었다. 평소에 알던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서로 다루어 보지 않았던 주제가 아이의 입에서 나왔고 나는 그저 그냥 듣고 대꾸를 해 주었다. 실컷 주저리 주저리 무언가를 쏟아 놓더니 아들은 만족한 듯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저 나에게 말을 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 덕지인데 그 주제가 하나같이 다양하고 심오하며 내가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이어서 아이의 변한 목소리처럼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하고 오묘한 마음이 들었다.
저 머리 보자기 속에서 이 아이는 온갖 고뇌를 거치며 성장하는구나. 하긴 나도 온갖 고민을 하며 나를 어른과 동일시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이 아이를 그냥 말 안듣고 약속 안지키는 어린 존재라 여기며 고쳐주는 것에만 집중했을까. 상하관계를 이제 슬슬 멈춰야 하는건 나였다. 나는 아직도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면이 있었다. 아들이 이야기하는 저런 주제들은 친구나 인터넷 상에서만 내가 나누던 주제인데, 이런 대화를 꼬맹이(였던) 아들과 하게 되다니, 새로운 차원으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오묘한 느낌에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신기하던지 아들이 자리를 뜬 후에도 한참을 미소지었다.
이제 나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명의 친구가 새로 생긴 것 같고, 나도 더 편하게 고민을 나눌 상대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오늘 참 기쁘다. 하지만 분명 오늘 저녁에 다시 만나면 녀석은 다시 동굴속으로 들어가 있겠지. 그리고 나의 질문을 역시나 귀찮아하고 게임을 하겠지. 그리고 나는 몹시 또 외로워지겠지만, 어제의 놀라웠던 저녁을 생각하며 이 녀석은 사실 저런 몽글몽글한 생각을 가지고 사느라 바쁜 거구나. 성장하는 과정을 애써 들춰보려고 해서 괜히 생채기 내지 말자. 그저 잘 흘러가도록 끈기있게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자. 생각보다 녀석은 잘 성장할 것이고 나는 믿으면 되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편이며 너의 손을 놓치 않을 거라는 믿음만 끊임없이 새겨주자.
나를 피하고 경계하고 도망만 다니는 마방 안의 망아지를 나는 굳이 다가가서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된다. 그냥 망아지는 존재하고 알아서 성장한다. 그저 잘 보아주고 밥 잘 주고 잘 살펴주면 언젠가 때가 되면 망아지가 성장하여 나에게 올 것이라 믿는다.
이상. 초보 사춘기 엄마의 감정 널뛰는 성장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