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저기요' 라고 입을 떼보다

이렇게 힘들 줄이야

by 말자까

2. (모르는 사람, 대면) 오징어 파는 가게에서 마요소스 더 달라 하기.


사실 이 질문은 "공연장에서 자리 바꿔달라 하기"의 대체 질문이다. 실은 공연을 보는 그 대망의 날에 내가 너무나 분위기에 너무 심하게 몰입하는 바람에 거절 프로젝트를 홀라당 까먹어버려서 아쉽게 실패하였다. 사실 그 역사적인 날에 내가 거절 미션을 행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설정이었긴 했다. 지나기 전에는 가능할 줄 알았는데, 지나보니 무리한 질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거절미션 초보쟁이라 난이도 설정을 실패해가며 조정하는 와중이라 생각하며, 비슷한 급의 타인에게 요청하는 성격의 생활 속 다른 미션으로 대체해 보았다.


어느 휴일 바다 해안도로 앞을 걷다가 오징어를 구워서 파는 상회에 들르게 되었다. 예전에 와봤던 조용하던 그 상회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줄서는데 30분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맛난 오징어는 정말이지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헐레벌떡 열심히 오징어를 쭉쭉 찢어서 소스를 찍어 먹다 보니 반도 먹지 않았는데 오징어를 찍어 먹는 마요네즈 소스가 부족하다. 이런. 평소의 나였으면 사람도 많은데 소스는 고마 그만 먹고 남은 오징어만 먹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거절 프로젝트가 생각났던 것이다. 나는 그래 이게 기회다 싶어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오징어 굽는 너무나 바쁘신 할머니께 다가가서 여쭤보았다.

요청은 여전히 낯설다. 특히 평소에 이런 것을 안해 보던 나는, 괜스레 원래 질문 잘하는 사람인 척 하고 싶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크게 물어봤다.


"저기요. 소스 종지 하나 더 가져가도 되죠?"
"안돼요."


헉.. 단호하고 커다란 목소리에, 줄 선 사람들이 모두 다 쳐다본다..너무나 부끄럽다. 주목받는 것은 역시나 너무나 부끄럽다..하지만 프로젝트는 성공이니..이 순간을 조금만 버텨보자..


"그건 안되고, 종지 가져와서 저기 가서서 리필해서 가세요"


라고 친절하지만 커다란 목소리로 오징어 굽기를 중단하고 친히 말씀해주셨다. 덕분에 좁은 공간에서 줄선 심심한 모든 이들의 이목도 나에게 집중된 채로, 나는 종지 그릇을 얻은 다음에 저쪽에 가서 마요네즈를 짠 다음 좁은 줄 사이를 빠져 나왔다. 마스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순간의 부끄러움을 극복한 결과 나는 맛있게 찍먹 듬뿍한 고소한 오징어를 알차게 먹었다고 한다.

R1280x0.fjpg.jpg


3. (모르는 사람, 대면) 커피 리필해달라 하기


이번 달에는 스벅을 갈 일이 없어서 인근 신상 까페를 갈 때 시도해 보았다. 사실 까페는 워낙 자주 가니깐 나름 난이도가 낮아서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여전히 나는 진상되는게 너무나 어려워서 차일 피일 미루고만 싶다. 왜 내가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러다가 1월이 정말로 끝나갈 것 같기에, 오랫만에 까페에 온 차에 오늘이 마지막이다 싶어서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절반쯤 먹다가 카운터로 눈 질끈 감고 용기를 내서 다시 가서 말을 걸어 보았다.


(굉장히 죄송한 표정) "저기요. 혹시 리필 안되죠?"


(점원분은 의외로 의연하심) "아... 저기.... 그러면 컵 가져오시면 물 채워드릴까요?"


(반사적으로 한 대답) "아 네 감사합니다"


주인이 거절하지 않고, 나에게 질문으로 역공이 들어와서 내가 거절을 하지도 못한 채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고 코맹맹 소리로 말해놓고선 자리로 황급히 되돌아 왔다. 내 손에 쥐어진 건 반 남은 나의 뜨아에 물을 가득 채워 재탄생한 밍밍한 뜨아.

아메리카노에 뜨거운 물이 희석된 나의 리필 전리품은 참으로 맛이 없었다는 무언가 어설프고 웃픈 이야기로 나의 1월의 마지막 미션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R1280x0.fpng.png


소소한 미션 수행일지를 적다 보니 웃기기도 하고 소심한 내가 적나라해 보여서 어색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색다른 거절 당하기 미션들이 새해인 1월 나의 삶의 신선한 활력이었고, 책상에 항상 써 있었던 3가지 미션을 나름 짱구를 굴려가며 생각해보고 스스로 시도해 보았다는 뿌듯함이 있다.


1월의 성과는, '활력'과 '뿌듯함' 이다.

거절을 스스로 당하는데 적어도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꽤나 나 자신이 뿌듯했다. 내가 나 자신을 칭찬한게 도대체 언제였던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를 내던져보고 나서 잘했어,,하고 나를 쓰담쓰담해주는 이 기분. 꽤 괜찮다.


그리고 의외로 나의 민감하고 폐끼칠까봐 눈치보는 나의 수치만큼 상대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에 대한 마음을 내 맘대로 재단하는 것, 어쩌면 나만의 시야에서 설정한 고정관념이었을 텐데 일단 부딛혀보니 내 마음이 과한 것, 그리고 상대의 마음은 덜하다는 것. 이야 말로 실전으로 깨닫게 된 사실이다.


거절당하기 프로젝트.

2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뭔가 본격적으로 거절당할 질문을 심오하게 선정해 보겠다.


워밍업이 끝났으니 이제는 정말로 거절당할 질문 본게임 3개를 책상에 붙여보기로 한다.

이상 끝.


..이 아니고 2월에 다시 돌아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EP 2. 미션을 계획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