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첫째의 체육대회가 보고 싶어서 괜히 학교 담장길을 슬쩍 걸어 보았더니, 꺅꺅하는 아이들 함성소리와 음악과 함께 가득찬 운동장의 오랫만의 활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난 주에는 3년만에 소풍을 가는 둘째 김밥을 싸느라 찬장 저 안의 서랍 속 도시락통을 찾는데 얼마나 낯설던지 아침에 도시락 싸는데 양조절을 못해 몇 번을 헤매다가 결국 둘째한테 맘에 안든다고 한소리 들었다. 코로나가 정말 물러나고 있다.
영업 제한 시간이 풀리면서 갑자기 늘어난 술과 사람과의 만남으로 수면 부족과 숙취 속에서 하루 하루가 점프업하듯이 지나갔고, 그 와중에 야간 수술이나 입원망아지 진료의 과부하가 중간 중간 들어왔다. 여러가지 개인적인 큰 일들이 역시 펑펑 지나가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뜬눈으로 버티고 버티다가 드디어 혼자만의 휴일인 어제 정말 1박2일은 잠만 잤다. 밥주고 잠자고, 빨래하고 짐부치고 잠자고, 청소하고 과자먹다 잠자고, 그리고 밤에 또 자고, 드디어 오늘에야 뇌의 눈을 뜨니 벌써 5월의 절반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정신 차리니 밤에 주식보는 것도 이제 자제해야 겠고, 차트공부도 나에게 확증편향을 주는 것 같아 조금 멀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오픈 채팅방이랑 블로그 업로드도 나에겐 과부하임을 깨닫는다. 읽으려고 주문해 놓은 책이 3권이나 아직도 책상에 놓여져 있다. 어려운 건 멀리 못본 체하고 누워서 할 수 있는 게으름만 맞이하고 살았다. 오히려 다리 아프다고 쉬었던 운동을 천천히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런! 거절 프로젝트 하나인 논문투고 준비도 얼릉 해야 한다. 시도도 안하고 거절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원래 하던 일부터 하는게 마음 편하다.
어제 저녁 남편과 둘째와 마트에 가서 이것 저것 물건을 사고, 집에 와 간식을 해먹고 씻고 누워서 끝말 잇기 하면서 맞춤법 가지고 투닥대는 아이들과의 순간이 날 가장 편안하게 만든다. 새로운 수술 공부하고 내가 잘 못하는 조작을 집에서 연습하는 시간 역시 너무나 소중하다. 워라밸 때문에 그 좋은 애플도 네이버도 퇴사한다는 요즘, 나에게는 뭐가 일이고 뭐가 라이프인지 모호하기도 하다. 밤에 자려고 하는데 응급콜이 왔다고 퇴사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벽에 입원말보러 깜깜한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어도 그건 그냥 누가 시킨 일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그러고 피곤해서 졸고 집에 가서 퍼지고 약속이 취소된다고 화가 나진 않는다. 복잡한 회사의 일이 나를 힘빼고 좌절시킬 때도 있지만 그 또한 함께 이고 지고 가야 할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욕하고 남 탓하고 쾌락을 쫒다가도 후회하고 다시 정신차리고 그저 내 갈길을 가자고 단도리하는 나는 정말 일개 하나의 힘없고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
일과 삶에 균형 (work-life-balance) 을 찾아야 한다?
아니!
일도 사실 라이프 안의 카테고리이다. (샤이니샘의 말씀이 정말 맞음!)
워라블 (work-life-blending) 이다.
샤샘 말씀대로 일과 삶의 블렌딩을 유지해왔던 나는, 특히나 욕심이 많은 나는, 정신차리고 정리를 하고 우선순위를 다시 정할 필요가 있다. 욕심은 선순환을 방해한다. 버리고 버리자. 게으름을 버리고 효율을 찾자. 일도 사랑도 포함되어 있는 내 라이프에 코로나의 종식과 함께 스리슬쩍 과부하가 왔다면 내가 순위를 정해가며 선택하여 이끌어야지, 분위기에 휩쓸려 그저 손쉬운 악에만 이끌려 중요한 길을 잊으면 아니된다. 2022년 번식씨즌의 한복판 속에 내가 존재함에 그저 감사한 나는 더욱더 시간의 집중에 정신을 쏟자.
5월. 2주 남았다. 오마이갓. 얼릉 논문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