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40년 가계부를 쓰신 알뜰 왕 아버지

기록의 힘이란!

by 디지로그마담앤

나는 태어난 날은 알지만 태어난 시는 모르겠는데?” “ 아버지 가계부 앞에 적혀 있어 찾아봐.” 바로 위에 언니가 말해 주었다. 아버지는 항상 가계부를 꼼꼼히 쓰셨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버지는 40년 가까이 가계부를 쓰신 것 같다. 예전에는 집에서 출산하는 일이 흔했고 막내인 나조차 엄마는 집에서 가뿐히 출산하신 건강한 분이셨다.


내가 몇 시에 태어났는지 나도 궁금해 언니의 말대로 아버지 가계부를 열어 보니 맨 앞장에 큰언니부터 순서대로 생년월일 태어난 시까지 이 적혀 있었다. 아마 기록해 두지 않고 기억에만 저장했다면 나처럼 막내는 태어난 시도 모르고 살뻔했다.


아버지는 알뜰한 살림을 위해 늘 가계부를 쓰셨다. 그 가계부는 거의 가족의 기록사나 마찬가지다. 과일값이나 비료 가축 사료값은 기본이고 자식 중에 누구의 용돈 누구의 책값 등 참 세세히도 적혀 있다. 아버지는 참 지혜로우셨다. 매번 일상에 필요한 돈을 받아 간다는데 서로에게 번거로움을 아셨는지 어느 날부터 “가계부에 적어 놓고 돈 가져가라.”라고 하셨다. 늘 가계부 안에는 장사 밑 전처럼 얼마의 여윳돈이 있었고 나는 필요할 때 어떤 일로 가져가는지 적어 놓고 금액만큼 가져갔다.


아버지의 가계부가 가장 바쁠 때는 바로 여름 가을이다. 과일이 나오기 때문에 1년 치 농사의 집계나 마찬가지다. 과일은 주로 새벽 시장에 도매나 소매로 넘겨졌다. 새벽마다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새벽 2~3시에 시장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출발하셨다. 다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10시가 되었고 대충 아침 식사를 하시고 가장 중요한 정산을 하셨다.


이럴 때 엄마의 기억력은 거의 천재 수준이었다. ”00집에 복숭아 2 상자 , 00 청과에 사과 3 상자 복숭아 한 봉지 00원“이렇게 그 많은 과일을 누구에게 얼마로 넘겼는지 도매가 소매가 따로 술술 나온다. 그러면 아버지가 가계부에 다 적고 난 뒤 돈지갑의 현금과 계산하면 거의 맞았다. 그렇게 정산을 끝내고 새벽 시장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잠시 눈만 붙이고 오후에 다시 물건을 하기 위해 과수원으로 나가셨다.


부모님은 돈을 허투루 쓰신 적도 없고 자신들을 위해 쓰지도 않으셨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새벽 시장 저렴한 식재료를 가득 싣고 오셨다. 경운기에 과일로 가득했던 상자에 다른 무엇으로 채워 오셨는지 저절로 기대되었다. 그 당시는 동네 상점도 멀어 군것질거리라도 사 오시면 그야말로 횡재하는 기분이었다.

가을 마지막 걷이는 바로 밤이었고 밤 수확까지 마치면 아버지는 1년 치 정산을 하셨다. 한참 전성기 시절에는 밤의 수확량이 7톤이나 되었다. 매번 가계부를 쓰시기에 농사의 총량도 정리하실 수가 있었다. 비료 농약 등 비용 다 제하고 얼마가 남으셨는지 계산해 보시고 1년 치 농사 잘했다고 마무리를 하셨다. 물론 매년 풍년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집에 일이 많았는지 이해가 된다. 농사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기에 잠재된 위험이 항상 존재했다.



과수일 외 논과 밭농사도 있어 우리 집은 눈 뜨면 해야 하는 일들이 언제 줄을 서 있었다. 특히 현금으로 큰 효자인 건 소가 1순위로 10마리 정도 늘 키우셨다. 더불어 과수원을 지킬 개들, 사위들 오면 희생될 씨암탉들 전성기 시절에는 연못까지 만들어 물고기도 키우셨다. 정말 다양한 생물체들이 함께 살기 위해 늘 움직여야 하는 우리 집 구조였다.


근면 성실하다고 부를 일구고 지킬 수는 없다. 반드시 부는 지킬 수 있는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살다가 큰일이 생길 때 땅을 팔 수는 없기에 부모님은 다양한 수익화를 만들어 놓으셨다. 쌀과 밭농사도 많이 지어야 많은 식구들의 식재료를 충당할 수 있기에 다양한 일을 하셨다. 특히 과수원에서 소를 키우면 골치 아픈 풀도 해결하고 사료도 적게 들어 일석이조였다. 언니 오빠들의 대학 학자금으로 팔려간 소들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여유는 추운 겨울 정도였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겨울이었다. 겨울철 수확하고 남은 사과, 밤, 고구마 등을 밤새 먹으며 가족끼리 깔깔거리며 웃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 겨울의 풍성함은 봄, 여름, 가을 쉴 새 없이 일했던 부모님 피땀의 결과물이었다.


부모님의 모든 걸 바쳐 일구워 내고 지켜온 과수원에서 우리는 모두 잘 자라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막내인 나도 결혼해 마지막 손자인 우리 아이들도 어린 시절 외갓집 과수원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과수원을 통해 3대가 저마다 이어져 가고 있다. 과수원을 누비던 부모님은 어느새 마음대로 과수원을 걸을 수조차 없는 건강상태가 되셨다. 돌아보니 바쁘고 힘든 모습이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부모님의 일하시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다.


아버지의 창고에는 트랙터, 농약 살포기 등과 각종 농기구들이 즐비했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농사지으며 안정된 농사일을 위해 새로 나온 기계들 구매하시는 걸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보물 창고가 어느덧 전성기는 온 데 간 데가 없고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가 휠체어가 놓여있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전성기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 잔상이 참으로 마음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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