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은 타인만이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나의 그림자.
빛에 가려져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 애써 외면했을 나의 그림자를 만났다.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다니.. 혼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을.
교권침해와 동료교사의 죽음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며 치료를 선택한 나에게 상담의 기회가 찾아왔다.
"1주일에 한 번 6회기 상담이에요."
지쳐 있던 나는,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엔 거절했다. 그저 쉬고만 싶어서..
"선생님, 상담 받으러 가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고 힘든 일이잖아요. 학교에서 시간 내서 받으시면 어때요?" 너무나 고마운 교육복지선생님의 말. 사실 전주로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일이 녹록치 않은 건 사실이었다. 차로 왕복 3시간의 거리라 생각만 해도 지쳐서 포기했었다.
그래, 한 번 만나보자. 나를.
그렇게 1회기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 뜨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상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나도 본 적 없는 곳까지 닿을 것 같은 상담사의 눈빛과 질문들. 놀랍고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상담이 끝나갈 즈음, 질문을 하셨다.
"무엇이 가장 불안하세요?"
"음.. 죽음이요."
"아니에요. 선생님은 충동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충동성을 불안해하고 계세요."
"그런가요? 그러고보면 전 중요한 결정들을 충동적으로 한 것 같아요. 어린시절부터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겁먹기도 했어요."
"네, 아마 교실에서도 충동적인 아이들이 가장 힘드실 겁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진 아이들이요."
20여년의 나의 교직생활이 스쳐지나간다. 그래, 그랬었다. 지금도 충동적인 아이들이 유난히 힘들다. 내가 애써 외면했던 나의 그림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들을 대면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선생님, 충동을 나쁜것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충동은 호기심이에요. 충동은 파괴의 에너지도 있지만 창조의 에너지도 있습니다. "
"아, 그래요? 저는 나쁜 길로 갔을 수도 있겠어요.."
"아니죠, 반대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을 수도 있죠."
그래서였을까? 우리반 아이들이 예술적으로 유난히 뛰어난 것은.
"예전에는 충동적인 행동들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덜 해요. 글쓰기나 독서 같은거 하고. 변했나봐요."
"그게 바로 충동을 창조적인 에너지에 쓰고 계시는 거에요. 승화죠"
승화.
공황장애를 겪으며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랬구나.
"이게 약발인지, 승화인지는 좀 더 지켜보시게요."
웃었다.
상담사님도 약을 먹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그 기간동안에 연습과 훈련을 할 수 있으니.
그렇게 나는 나의 그림자를 만났다. 융 심리학의 그림자. 융은 모든 사람 안에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의 또 다른 면이 숨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마주하고 통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 '나'가 된다고."
이제 나에게 남겨진 과제는 나의 그림자를 만나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되는 일이다.
그림자야, 친하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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