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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Dec 26. 2021

내 몸에 제일 잘 맞는 옷을 찾는 일

마음에도 마찬가지- 그게 인생인 것 같다. 

... 몇 번을 쓰다가 또 접었던 글들을 뒤로하고, 2021년을 보내주기 전에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브런치를 연다. 무엇이든, 쓰지 않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렵게 시작한 소설도 꼭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몇 페이지 더 썼지만, 내 마음처럼 주인공들의 마음도 제자리걸음이어서, 올리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난 11월 말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정리의 '바람'이 불었다. 실로 반가운 변화의 바람이었다. 나만의 공간으로 이사를 하고, 몇 명인가의 사람들과 마음속으로 이별을 하고, 작년부터 시작했던 심리 상담과 상담자 양성 과정을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해서 정말 많은 눈물을 쏟았다. 마음에 가뭄이 들어도 좋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다. 격랑의 파도는 다 지나가고 남은 건 잔잔한 바다일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어낸 4주여간의 시간만 남았다. 지난 10여 년간 나는 참 많은 새 출발을 했다. 부모님 집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한 20대 후반의 그날부터,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해서 지금 여기에 흘러 올 때까지, 나의 의지로 헤엄쳐 살아왔다. 때로는 차라리 파도에 휩쓸리는 게 나았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폭풍 속에서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고, 의지하고 싶었고, 그렇게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도 싶었다. 


'그냥 힘이 들어서 그랬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어'

'그냥 될 대로 되라고 하고 싶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말들은, 왜인지 내 마음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서로 기대면서 함께 자라나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라 부서진 내 모습을 어딘가 비슷하게 가진 부서진 다른 사람을 만나서 나는 또 파괴적인 사랑만 하고 있었다. 좋을 때만 마냥 좋고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고슴도치 마냥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자기의 동굴 속으로 숨기에 바쁜 그런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영혼의 짝을 만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랑만 하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와 깨닫게 된 사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였다. 온전히 나의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여주지 못하고, 내가 가진 엄격한 기준에 자신이 부합하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질책하며, 타인의 시선에 내 옷을 맞춰 입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한 가지는 나의 '화가 난' 감정이었다. 화가 나고 속상한 내 마음을 나조차 알아주지 않았으니, 누가 보듬어 줄 수 있었을까? 상대방에게 제대로 그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으면서 '알아차려 주길 바란 기대감' 때문에, 나는 실망하고, 상처 받고,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다.


46회기의 긴 상담을 마무리 지으면서, 선생님이 내게 말씀해 주신 건,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라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 만든 오래된 습관은, 때때로 자주 나를 우울의 바다로, 혼자만의 섬으로 내몰 수도 있지만, '잘 버텼다, 이 정도는 괜찮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고 스스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말들을 해 주라고 하셨다. 난 거기에 가끔 오지랖도 부려 친구들의 이야기도 마음 주어 들어주지 않나. 내 공간으로 이사를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와중에도' 신세를 갚고 싶었던 사람들을 한 둘 씩 불러 집밥을 해 먹인 거 아니었나. 그래서 나의 12월은 그런 혼자만의 연습들로 채워졌다. 막 걸음마를 뗀 나의 새로운 길, 내 몸과 마음에 새 옷을 맞추는 작업으로 바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드디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나를 어디에서 잃었을까' 하고 자조적인 말을 내게 건네었다면, 이제 나는 험난한 길을 딛고 지금 여기에 잘 안착했구나, 나는 나를 드디어 찾았구나. 그런 말을 하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었다. 삶의 곱이곱이 도랑에 빠졌었다고는 해도, 포기하지 않았고, 후회는 했으되 계속 조금씩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내 마음의 짐이 가벼워질 때까지 나는 그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을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 삶을 스스로 끊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그렇게 지나 온 길을 되돌아보고 있다. 스스로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나의 감정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내가 나의 마음을 정확히 통찰하고 지각하고 있어야 타인의 감정도 맑게 볼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은 그들의 몫이지 나의 탓도 아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온전히 내가 통제하기도 하고, 받아들여주기도 해야 할 나의 몫이다. 타인에게는 들리지 않을 마음의 외침은 이렇게 글로 정리하기도 하고, 이사 온 집 근처의 공원을 거닐면서 정리하기도 한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였을 때 받아들여지는 것은 타인의 몫이고, 잘 표현하는 것만이 내 몫이다. 표현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다. 감정까지 이분법으로 정리하는 것 같긴 하지만,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던 나의 오랜 습을 타파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나름 구획을 짓고 있다고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사십 년 정도 살아보니 깨달은 것은, 감정은 억누른다고 억눌러지지 않는다는 것과, 사는 건 생각보다 많이 어렵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쉬울 수도 있다는 것, 이거 두 가지인 거 같다. 지금 이 순간의 포근함, 안도감, 시원함을 내년에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순간순간을 잘 알아차리며 살려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지금 하는 일들을 이어갈 것이다. 나의 마음에서 '이제 그만 보내주어야 할' 아픔들을 오롯이 느끼고 바라보며 치유했던 지난 일 년 반 정도의 시간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게 지지를 보내준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들 건네드리고 싶다. 


열두 살 무렵의 담임 선생님께서 졸업을 앞둔 내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다. 

'너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너를 사랑한단다' 

그 말씀의 뜻을,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와서 이제야 알 것 같다.


지금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기쁨이고, 해방이다. 감사함이다. 잊지 않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일 뿐 다른 사람의 기대로 만들어질 순 없다는 걸.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분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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