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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Feb 08. 2022

한 달 동안의 궤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신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앉아서 다시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내가 변화하는 일이 맞다. 타인의 마음이던, 회사의 시스템이던, 세금이나 코로나에 얽힌 것들까지도 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부스터 샷을 맞고 와서 아프다는 핑계 삼아 쳐져 있던 나날들 속에서,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것은 '변화해야 하는데'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감 때문이었다.


내가 진짜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은 뭐였을까?


브런치에 2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쌓여있던 이야기를 털어내고 나니, 내가 찾아낸 나란 인간의 실체 속 Ego는 실로 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구석에 웅크리고 툴툴대면서도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억척스럽게 해오기도 했던 나는 오히려 고집 세고, 융통성 없고, 내 생각보다 유능하지도, 그렇다고 유약하거나 악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보통의 평범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었던 그런 애였다. 다만 삶의 어느 순간들마다 눌러 내려온 표현 방식 때문에,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렵다. 


짜증 나, 

힘들어, 

나한테 그러지 마

네가 나빴어


이런 말들을 해야 할 순간에 나는 오히려 다른 행동들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했다. 그랬더니 가장 친한 사람들, 가족들부터 나를 홀대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중하지 않은 존재고, 스스로 막 대해도 된다고 착각했던 적도 많다. 이제는 틀을 깨고 나오는 중이고, 종종 실제로 그런 순간들이 있는데 일하다가 발현되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곤 한다. 어제의 일이다.


이 프로젝트 어떻게 돼가나? (상사의 물음)

아 좀 채근하지 마세요! (나의 즉각적 반응)

... 약 3초간 침묵...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프로젝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몸이 아프니까 거기에 대한 기본적인 스트레스가 생겨서 누가 재촉을 하면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나서는 저녁에 혼자 앉아 요가를 했다. 내가 나를 알고 사랑해야, 내 줏대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이 마음을 표출하는 것인 만큼 순간 튀어나오는 말들을 제어하려면 진짜 내 마음이 맑고 안정되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시선이 고유한 만큼, 타인의 시선도 고유하고 때론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으니, 겸허해야지 했다. 그런 다짐을 하고 난 오늘 낮 즈음에도 비슷한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래서 다시 다짐해 본다. 


마음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자.

쌓인 게 있으면 말을 하자, 제발.

나는 그렇게 착하기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을 함부로 써 가면서까지 일을 하지는 않으리라. 누가 나를 미워한다면, 그 미움을 받지 않고 잘 보이려 애쓰는 대신에 그냥 그대로 되돌려 주기도 하리라. 내 안에서 나를 누르던 판자들이 그것들을 고정시켰던 나사가 하나둘씩 부서지며 위로 자꾸 튀어올라 사라진다. 깨지고 부서진 파편을 치우면 하늘이 맑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부스터 샷의 후유증으로 몽롱해진 머리로 다짐한다. 나는 변하고 있다. 내 안에 무엇인가는 부서졌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어색하지만 자유롭다.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고민으로 걱정하며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너무 안타깝다. 


1월에 내가 그래도 잘한 일은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고현정이 했던 필라테스 리포머를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레슨 끊은 것, 책상 위 책장 조립한 것, 싱크대랑 유리창에 불투명한 보호필름 부착한 것, 원룸 천장에 곰팡이 핀 것들을 집주인에게 따져서 방역하고 새로 페인트칠한 것 (예전 같으면 귀찮아서 방치하고 살았을 수도), 엊그제인가는 연례행사 같은 옷 쇼핑을 한 것, 그리고 책을 세 권은 읽은 것, 이사 와서 생각만 했던 침구류 시트를 갈고 매트리스 토퍼를 깐 것, 입춘 전에 열심히 청소한 것, 적어도 명절 이틀 동안은 사람들과 전을 부쳐서 먹고 놀았던 것, 이 있다. 


막상 적고 나니 스스로 쳐져 있었다고 생각했던 1월이지만, 나쁘지 않았구나. 아무것도 못했어!라고 비난하기보다는, 잘한 일들을 칭찬해주고, 중심이 휩쓸린다면 재다짐하는 그런 나이길 바란다. 그래서 글쓰기는 짧은 기록이라도 중요하구나 새삼 느낀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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