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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Apr 11. 2022

사월은 잔인한 달

 티에스 엘리엇을 기억하는 난 여전히 상처받은, 고등학생?!

매일 같이,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기록하면서 가졌던, 내 삶에 부여하는 의미, 내 관점, 그리고 다짐 같은 것들이, 매일 같이 조금씩 허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 씨가 이야기한 감성 근육을 키우는 걸, 나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올해 들어 체력이 급강함과 동시에 그러한 행위들도 점점 빛이 바래져 간다.


학교 폭력에 대한 묘사와 피해자들이 난무하는 드라마 속의, 가상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복수극에 환호하는 것도 잠시, 그런 어두운 이야기들 없이도 내 삶은 충분히 힘든데 굳이 거기에 이런 피로감까지 더해야 하나 싶을 때,  글쓰기라는 자정 작용을 하면서 오뚝이처럼 중심점의 멘털로 돌아오던 나는 어디에 있는지. 브런치 속에서 불타던 나를 기억해 내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친구들이 아니라, 잦은 환경의 변화였다. 6년 동안 다섯 번의 전학을 했고, 그때마다 환경의 변화가 주는 중압감을 무시하면서 버티려고 하다가 주저앉고 싶을 때, 가수 전람회의 노래 가사에서처럼 '이젠 버틸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내 삶에는 음악이 함께했고, 어떻게든 숨을 쉴 구멍이 되어 주는 한 두 사람 - 행운의 네 잎 클로버 같은- 의 친구들도 존재했다. 음악이 있어서 구원받았고 음악으로 소통했고 그 음반들을 사려고 세상에 조금씩 나아가 돈을 벌었다. 돈을 벌다 보니 인간관계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내 목소리를 내야 호구가 되지 않는구나, 배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도 그때와 크게 결이 다르지 않다. 나는 처세술이 늘었을지언정 성격은 그대로, 어딘가 모남을 유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둥글둥글하게 지내고 있다. 이것이 모든 자극에 무뎌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그대로 내게 쓸쓸함으로, 피폐함으로 다가온다. 주도적인 내가 되고 싶었다. 내 삶과 태도에 있어서 말이다.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기대 왔던 의존적인 내가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티에스 엘리엇의 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은 내게는 상징적인 시이다. 매년 사월이 되면 삶의 어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했기에, 여리고 상처받은, 겨우내 남몰래 떨고 있었던 내 틀을 깨고 나오는 일이 늘 버거웠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그 도전의 끝에는 달콤한 환희의 순간도 있었다.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열 댓살부터의 내 삶은 개척 정신 그 하나로 버텼던 것 같다. 그게 나의 타고난 성격과 팔자라면야, 그대로 받아들이리라. 더 이상의 이견은 없다.


지금 내 마음속에서 몽글어지며 피고 있는 건, 하나의 봉오리이다. 수천수만의 작은 다짐이 모여 피워낸 앗, 그것이 마침내 영글어진 하나의 봉오리이다. 이것을 피우기 위해 올해 남은 시간들을 보내리라 다짐한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능력을 값지게 쓰는 것이다. 소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하는 일이다. 마음으로만 다짐하면서 안타까워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실천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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