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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Aug 23. 2023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지난 10년 간의 주거형태에 대한 소회

현지 교민 잡지에서 원고 의뢰를 받고 많은 고민에 빠졌다. 수필이되 지나치게 신변잡기적은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얼마 전 이 나라의 국경일에 내가 이곳에 온 지 만 십 년이 되었음을 깨닫고, 그동안 몇 번이나 이사를 했나 곱씹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만난 나의 지인이 그런 말을 했던 게 생각이 난다. 외국인 신분으로 이사할 때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고. 착하게 사는 것만이 능사인가? 아니다. 집 구할 땐 세계 어디서든 깐깐한 세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취업에 성공하고 이 나라에 처음 다다르기 전,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매물도 보지 않은 채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 일하게 될 직장 근처의 공공 임대 주택의 master bed room(화장실이 딸린, 보통은 그 주택에서 가장 큰 침실)을 빌리는 큰 실수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 매물의 한 달치 deposit (계약금)을 송금하고, 여성이었던 property agent (담당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도착하는 비행기 편명과 시간을 알려주고는 공항에서 랑데부를 했던 그날. 그녀는 저녁 늦게 이 곳 공항에 내린 나의 짐을 집주인 차에 싣고, 계약한 매물이 있는 근처의 비교적 저렴한 푸드 코트. 주로 야외에 위치한 곳으로 데려가 동남아식 볶음 국수인 char quay tiao를 대접했다. 무심결에 테이블이 더러워 휴지를 꺼내 테이블을 닦던 나를 보며, 그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내게 말했다. 


‘나는 그때 네가 청소 잘하는 세입자일 줄 알았어’


이것도 일종의 테스트였나 싶지만,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곳 생활에서 내게 가장 좋은 조언자이자, 친구이다. 그렇게 도착한 집에서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피곤에 찌들어 샤워를 하고 깬 다음날, 나는 집의 상태를 보고 내 성급했던 결정을 후회했다.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대리석이 아닌 돌바닥 (온도를 낮추기 위한 목적인 것 같다), 온갖 생활 소음이 들려오는 6층이라는 애매한 층수, (공공 임대 주택 1층에서는 장례식, 결혼식, 기타 관혼상제 행사가 있을 수 있고, 인종에 따라서 노래방 기기를 놓고 종일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나무 봉에 옷걸이를 걸어 창문 밖이나 부엌 옆에서 빨래를 널어야 했던 풍경 등, 알던 바 없던 동남아의 생활은 참 생경했다. 하지만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밥을 해 먹으려고 부엌에서 불을 켤라치면, 어디선가 부리나케 달려오는 바퀴벌레였다. 그것들은 빛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나타나서, 내 심장을 덜컹하게 만들고 도망가곤 했다. 그 광경을 몇 번 목격하고 나서 나는, 요리를 꽤 좋아했음에도, 외식이나 샐러드 같은 생식만 먹고살았다. 그래도 청소 상태만 빼면, 집주인아저씨랑 아들은 친절했고, 옆방 사는 대만인 스튜어디스 아가씨도 내게 친절했다.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 이들은 집에 지쳐 들어오는 내게 ‘잘 다녀왔니’라는 인사는 살갑게 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때는 참 많은 힘이 되었다. 집은 동쪽의 번화가라는 T역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지하철 타고 이동하기에도 용이했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닐 때도 편했다. 하지만 최소 주거 기간인 6개월이 다 되어갈 때쯤, 이 집을 떠나야 하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건 다름 아닌 Lizard (도마뱀)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샤워 후 침대에 걸터앉아 무심결에 바라본 침대 밑 돌바닥에, 내 팔뚝만 한 희고 부리부리한 도마뱀 녀석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가끔 부엌에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걸어놓으면 파이프를 타고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 안에 처박히곤 했던 녀석과 닮아 있었다. 피곤한데 빨리 자야 다음날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공용 바퀴벌레 스프레이를 들고 와서 반통을 분사시켜 녀석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기절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는, 나의 선택 때문에 더 큰 고민에 빠졌다. 이 녀석의 사체를 치우지 않고 잠들면 바퀴나 개미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나는 다시 신문지 뭉터기를 들고 와서는 이것을 곱게 싸서 부엌 싱크대 안에 위치한 쓰레기 출구로 배출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다음에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연이 겹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옆집 대만인 세입자도 본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해 버렸다. 새벽에 떠난 그녀는 나를 꼭 껴안으며 부엌에서 만날 때마다 반가웠다고 말했다. 모든 이별에는 시기가 있구나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결심을 하자 한국에서 떠나올 때처럼,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벌레들에 시달린 나는 무조건 Condominum(콘도- 수영장 등이 있는 아파트)의 common room(화장실이 딸리지 않은 방)만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살고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그러나 역세권은 아닌 곳의 콘도를 찾게 되었다. 그 집은 한인 가족이 방세를 놓은 곳으로, 초등생 아이 두 명이 같이 살고 있었다. 집의 청소 상태가 최우선이었던 나는 유일한 세입자가 나임을 알고서, 마음 착해 보이시는 아주머니와 sublet (전대. 보통 정식으로 하려면 본래 콘도의 집주인과 정식 세입자 사이의 계약서에 전대 가능 여부의 문구가 있어야 하나, 엄밀히 말하면 이 계약은 집주인 입장에서는 불법이었을 것이다) 계약을 한 뒤, 그때까지 짐이 택시 트렁크 한 칸 정도밖에 안 되었던 터라 바로 이사를 했다. 그 집에 들어가던 날 아주머니가 싸주신 김밥 한 줄의 따뜻함이 지금도 기억난다. 전에 살던 master bed room보다는 많이 작았지만, 나무 바닥에 앉아서 에어컨을 켜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함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아주머니와 나는 좋은 공생 관계였던 거 같다. 아이들은 보통 내가 출근하기 전 스쿨버스를 타고 나갔고, 3년 가까이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바깥 주인아저씨는 몇 번 뵌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셨다. 가끔 말동무가 필요하면 아주머니와 나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에서 많이 도왔다. 이야기를 하다 중간에 날아들어온 작은 도마뱀 한 마리를 거침없이 죽이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는 좋아라 하셨다. 물론 이 집에서도 벌레의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해충 관리를 해 주는 콘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미떼들의 출현에 마음 졸이곤 했다. 개미들이 분필을 싫어하는 것, 또 옷장에 넣어둔 계피 스틱을 싫어한다는 걸 아주머니에게 배워 알게 되었다. 도마뱀은 오이랑 후추 냄새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이건 실험을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리고 가끔 내가 몸이 아프면 아주머니는 내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해 주시곤 했으나, 세입자인 난 그 집 냉장고 한 칸을 배당받고 저녁에는 밥을 해서 방 안에서 먹고 치우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 집에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큰 힘이 되었다. 그 집에서 산지 3년쯤 지난 때였을까? 2주 정도 해외 출장을 갔던 때였다. 급하게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요는 내가 출장 간 사이 아주머니도 급히 귀국을 해야 하는 결정이 났고, 집을 비워야 하는 시간이 촉박해서, 같은 콘도의 한국인 가족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나를 이양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고 그분은 출장이 끝나기 전 내 짐들을 옮겨놔 주시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한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3년이라는 세월이 있었기에 믿을 수 있었다. 출장이 끝나고 새 집에 찾아가 보니 모든 것이 내가 살던 그대로 꾸며져 있었다. 같이 살았던 정도 정이라, 글을 쓰는 지금 새삼 그분이 생각나서 감사하다. 새로 이사한 집의 아주머니는 꼭 방문을 열고 출퇴근을 해줄 것을 당부하시면서, 매주 집에서 끓인 보리차 한 통을 주셨었는데, 역시 이것도 내겐 큰 힘이 되었다. 주전자에 팔팔 끓여 식혀서 1.5리터 삼다수 물 병에 넣은 보리차는 내게 집을 생각나게 했다. 전에 집에서도 서로 문을 열어두고 생활한 터라, 도난 문제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아이들도 특별히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들은 세입자를 들였을 때 모두 청소 상태가 극히 안 좋았던 기억들이 있으셔서, 그것만 조건으로 걸어두셨다고 했다. 새 집에서도 온화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거기서 그냥 지냈으면 주거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이곳 생활 4년 차쯤 내가 큰 실수를 한번 하게 되었다. 바로 지인과 공공 임대 주택 whole rent (내가 주 세입자가 되어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는 것)를 결행하게 된 것이다. 


중고로 산 침대도 있어서 처음으로 mover (용달업자)를 불러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나라 와서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북쪽의 주거타운 A였다. 역세권이고, 회사 출퇴근 버스가 가까이 있는 것이 장점인 이 집도, 처음 이 나라에 와서 살았던 공공 주택에서처럼 6층이었는데, 인테리어가 낡은 걸 빼면 널찍하니 괜찮은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어야 할 부분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집 안의 storage(다용도실처럼 짐 보관하는 곳)에 자물쇠를 걸어두고,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했던 집주인의 말이 좀 꺼림칙했던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을 보러 갔을 때, 오래된 가구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나는 그것들을 버려줄 것을 요청했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집 안의 곳곳을 증명사진으로 남겨둔 뒤, -그렇지 않으면 집을 반환할 때, 수리비 등을 물어내야 할 공산이 있다- 이사를 했다. 그러나 이 집도 살아보니 문제가 있었다. 


6층이라는 층수와는 상관없는 바퀴벌레의 출현, 그것이었다. 이들은 내가 아무리 청소를 한다 해도 음식 냄새가 풍기면 어디서든 날아들었다. 심지어는 부엌에 있는 쓰레기 배출구의 틈으로도 바퀴벌레 새끼들이 기어 나와서, 테이프로 그것을 막고 날마다 1층까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수고를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과 나 모두 일이 바빠 이사를 할 엄두를 못 내다가 6개월이 지나고, 다시 동일 조건으로 연장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정으로 인해 집주인과의 안 좋은 경험을 처음 해 보게 되었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 나오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지인과 관계가 틀어져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웠던 것이고, 또 하나는 마루에 있는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다리를 타고 오르는 바퀴벌레에 놀라 잠이 깬 경험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집을 나와야 할 경우, 세입자로서 해야 할 일은 남은 기간을 채워줄 세입자를 찾는 것, 대리 세입자가 계약을 할 시 중개업자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만약 그가 내가 내던 집세보다 덜 내겠다고 할 경우에, 그 차액을 남은 계약기간만큼 곱하여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미 벌레와 인간관계에 지친 나는 다시 회사가 있는 동쪽의 master bedroom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그걸 감수하고 대리 세입자를 찾는데 공을 들였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세입자들의 요구가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인데, 결국 이 나라에 처음 이주한 중국인 가족이 그 집에 들어오겠다고 했다. 안도감도 잠시, 집주인은 계약기간을 다 못 채운 만큼, 처음에 들어올 때 내가 버리라고 했던 가구들을 다시 다 채워놓으라고 요구했다. 딱 봐도 20여 년은 넘었을 이전 가구들을 대체할 것을 찾는데, 나는 이케아 조립 가구도 아까워서 현지의 친구에게 물어 재활용 가구를 취급하는 업자를 찾아 구색을 맞춰 주었다. 집주인은 그러고 나서도 흰색벽에 난 스크래치들에 대해 불평을 했고, 나는 어딘가의 맘카페를 뒤져 베이킹 소다를 희석한 물에 스펀지를 묻혀 그것들을 손수 지워주였다. 그런 다음에는 세면대 물이 안 내려간다, 부엌 찬장이 삐그덕 댄다, 기타 등등 이사 나오고 나서도 한 달 정도는 몹시 애를 먹었다. 이 집은 살아보니 부엌이 넒어서 요리하기는 좋았지만, 양 옆의 집들과 거리가 가까워서 옆집 부부 싸움까지 다 들릴 정도여서, 새로운 집은 무조건 조용한 곳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찾은 집은, 또 아주 새로운 주거의 형태였다.


바로, 요즘 유행하는 shared house (공용 주택), 즉 co-living의 형태로 집주인이 세를 놓은 3층짜리 landed property (단독 주택)이었다. 이 나라에서의 주거 형태중 가장 단가가 비싸다는 단독주택의 방들은 웬만하면 다 master bed room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공용 공간인 빨래터와 주방은 모두 집주인의 maid (청소인)이 관리를 해 주어서, 깨끗하고 조용했다. 또한, 내가 좋아했던 것은 공용 공간의 CCTV (방범 카메라) 였는데, 내게는 이것이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방안의 물품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침대 등의 교체를 요구한 뒤, 새로운 곳에서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집주인은 간밤에 잘 잤냐며, 꿈자리가 평안했으면 그제야 계약서를 쓰자고 하였다. 이 집주인은 중개업자 라이선스도 가지고 있었는데, 서로 요구조건이 잘 맞아서 어찌어찌 3년을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집주인 부부와 가끔 집에서 밥도 먹고, 심지어 단독 주택 3층 발코니에서 세입자들과 집주인 친구들과 함께 DJ를 불러서 파티를 한 적도 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술도 종류별로 들고 와서는 무한 제공해 주었다. 그런 부수적인 것들을 빼고, 이 집의 장점은 나고 드는 데 자유롭고,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고, 세입자마다 일 년에 한 번만 방문객을 허용하는 거였다. 역까지 도보로 7분인 비교적 역세권에, 잘 사는 집들이 많아 잘생긴 큰 개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이건 마치 이 나라 부의 지표라고나 할까)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집 바로 건너편에 절이 있었다. 나는 종교가 불교라서, 마음이 산란할 때는 출근하면서 절에 들러 향 하나 피우고 가곤 했었다.


이 공용 주택은 그리고 알고 보니, 내가 거주하는 2층, 3층을 제외하고, 1층의 방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다. 보기에는 (그리고 나에게는 실제로도) 이 맘씨 좋은 집주인도, 불법으로 1층에 구획을 세워, 창문도 없는 달방을 만든 것이었다. 1층에는 워낙 집에서 잠만 자는 세입자들, 주로 남자들이 많이 살았는데, 코로나로 Lock down(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 제외하고 타인과 접촉이 금지되었던 기간) 이 시작되기 조금 전, 누군가가 신고를 했는지 1층에 살던 세입자들을 다른 집으로 보내고 방의 구획을 모두 터버리는 공사를 했다. 이 나라 주거임대법으로 한 집에서 세를 놓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이 7명 정도였던 거 같은데 (그리고 이 세입자들은 모두 거주 비자가 6개월 이상 남아 있는 상태여야만 한다) 그 집에서는 12명이 살았었으니 말 다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과 출장, 여행으로 거의 집에서 잠만 잤던 집이라서, 물 한 병도 사다 놓지 않고 살던 나였다. 하지만 그 코로나란 것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하나는 락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우연히 3층으로 이사 온 나의 지인 – ‘집주인이 계약 전에 내게 사진을 보여주며 딱 하나 물었던 말, 청소는 잘하는 타입인가?’는, 지금도 생각해 보면 재밌다. 만약에 내가 그 지인의 청소 상태가 엉망이라고 했으면, 계약을 안 했을 건가? – 과, ‘락다운 기간 동안 공용 공간의 청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았던 경험이다. 


락다운이 시작되고 집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 그제야 집 주변에 뭐가 있구나 알게 된 기간이었다. 갈 수 있는 곳이 슈퍼밖에 없어서, 한식에 한 맺힌 사람처럼 집에서 매일 무언가를 요리해 먹었다. 3층의 지인 포함 사람들에게 냄새 피우고 나눠줄 음식까지 만들며, 나는 무료한 시간들을 버티곤 했다. 김밥 한 번 말면 12줄씩 해 먹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은 그들이 있어 힘든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고, 또 한국인 상사를 둔 태국인 룸메이트가 제안해서, 김치를 같이 담가 먹기 시작한 것도 큰 성과였다. 해 보지 않으면 몰랐던 것들, 그리고 나의 성격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또한, 공용 공간을 청소하라고 사람들을 독려하면서부터였다. 혼자 살더라도 사람들과의 유대관계가 있으면 버텨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이 집에서의 한 가지 단점은 방의 창문이 집안의 기둥을 향하고 있어 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3년간 바퀴벌레를 본 적은 다 한 번 뿐이었다. 대신에, 처음 이사하고 한 달 정도는 개미 박멸 때문에 힘들었다. 요즘은 분필을 대체하는 개미 박멸 약품도 판매가 되지만, 또 하나 더 정확한 방법은 슈퍼에서 판매하는 개미 박멸용 용액을 구입하는 것이다. 지인에게 소개받았는데, 이건 물웅덩이처럼 구석에 분사해 두면, 개미들이 먹고 집으로 돌아가 서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두 죽었다. 해서 초반에는 물웅덩이 주변에 시체들이 많지만, 몇 번 그 과정을 반복하면 모두 사라졌다. 학교 다닐 때 청소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적도 있는 만큼, 나는 사실 청소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무 바닥을 가만히 쓸며 느끼는 안정감은 예전에 대청마루를 걸레로 훔치시던 할머니가 생각나서일는지.


그렇게 생활이 안정되어 갈 무렵, 어느새 그 집에서 거주한 지 3년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 코로나 기간인 까닭에, 동쪽의 생활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하던 시점에, 마침 좋은 제안을 받아 서쪽 콘도에 살던 지인 집에서 6개월 정도 거주해 보고, 서쪽의 생활이 맘에 들면 새 집을 찾아 나가기로 결정을 했다. 친해진 집주인에게 사정을 잘 설명한 다음, 조금씩 짐을 옮겨 가며 이사를 했다. 이 나라 서쪽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자주 갔던 장소는 식물원인 보태닉 가든이었는데, 보태닉 가든 지하철 입구에서 내려 한 바퀴를 에둘러 반대편 입구까지 가면 약 5킬로미터 되는 산책길이 완성된다. 이 길은 소위 현타가 올 때,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쳤을 때 내가 가만히 걷는 길이었다. 서쪽에서 살기 시작하고ㅡ 지인과 가족 같은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조금씩 매물들을 검색했다. 그러다가 지금 살고 있는 Apartment (콘도보다는 작지만, 공공 주택과는 달리 보안시설이나 수영장 등의 시설이 있는 건물)에 당도하게 되었다. 


이 나라의 최근 콘도들은 집주인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한 unit(호실)을 반으로 쪼개 임대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곳도 그런 매물 중 하나였다. 몇 군데 집을 둘러보고 이 집에 들어온 순간, 나는 바로 마음의 결정을 했다. 채광이 좋고, 방과 부엌이 하나씩이지만 나누어져 있으며, 작은 발코니에 빨래 건조대를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unit 크기가 혼자 청소하기에 딱 알맞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집이 너무 크면 청소하기 버겁고, 그렇다고 바쁜 1인 가구인데 주기적으로 청소 업자를 부르기도 애매하기에 그렇다. 집 계약이 끝날 때나 한 번 대청소할 때 이용하는 좋은 서비스이나, 보통 주중에 한 번 청소하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정도 크기가 제일 좋다고 판단했다. 중개업자에게 집을 보고 5분 만에 이 집에 오래 거주할 것임을 시사하며 협상을 했고, 48시간 내에 계약서를 작성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주택 수요 공급의 문제로 월세가 오르기 전에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고, 꼼꼼히 봤다고 생각했으나 거르지 못한 건 곰팡이 문제였다.


집이란 건 살면서 적응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맞나 보다. 짐을 들여오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천장에 까맣게 낀 곰팡이 같은 벌레들을 발견했을 때, 잠을 설치며 중개업자에게 엄청 불평불만을 토로했던 시기가 있었다. 중개업자는 바로 집주인과 상의해서 청소용역 업체를 불러 하루 꼬박 걸리는 방역을 해 주었는데, 그러고 나서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큰 문제는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살아본 집 중에 가장 내 집같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매물 사이트에 가끔 들어가서 지금 집의 시세도 체크해 보고, 나라를 동서남북으로 쪼개어 중 살아보고 싶은 곳의 매물들도 들여다보고 있다. 부디 협상이 잘 돼서, 이곳에 살면 좋으련만, 미리 사서 걱정은 안 하기로 결심했다. 혹자는 월간 주거 비용이 월급의 15%가 넘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코로나를 겪으며 월세가 너무 오르긴 했으나,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여차하면 또 좋은 곳 발견할 수 있겠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더운 나라에서 집은 차가 없다면 꼭, 역세권에 구하시라 조언하고 싶다. 버스 몇 정거장의 거리도 시간 계산 잘하지 못하면 택시 타기 십상인데, 그 돈이 그냥 없어지는 돈이라 나중에 보면 정말 아깝다. 그리고, 지금 집에도 가끔 작은 도마뱀 녀석들이 나오는데, 실수로 슬리퍼로 밟았다가 이 녀석의 꼬리가 잘린 뒤, 그것이 마치 산 낙지처럼 계속 움직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휴지로 싸서 화장실 변기에 버렸는데, 도마뱀이나 바퀴 벌레의 사체는 하수구에서 번식할 위험이 있기에 화장실에 내리면 안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도, 어디에서 사시든 부디 잘 가꾸고 정돈하셔서 되도록 벌레들의 습격을 받지 않는 좋은 주거환경을 누리고 계시길 바라며, 10년 동안 집 관련해 만난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내 집에서 거주해 보는 게 나의 목표다. 


이 글을 퇴고하고 나서 몸에서 그동안의 기억들을 씻어내려는 듯이 구역질이 나서 엄청 토했다. 그렇게 게워내고 나니 엄청 가뿐해졌다. 힘이 들고 버거워도 자꾸만 나의 기억들을 남겨두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훗날 내가 나임을 자랑스러워하고, 걸어온 길을 추억하며 칭찬과 감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나면 모든 일들은, 잘한 일들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지나 간 일들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고 그만큼 더 삶에 익숙해진 나를 잘 다독여 앞으로 나아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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