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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Dec 05. 2020

Everything will find its way

결국에는 다 자기 자신의 제자리를 찾아갈 거야

오늘의 나는 수다쟁이다. 내 안에 풀지 못한 '화'가 쌓여 있을 때 친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엄청 신나서 떠든다. 그러다가 헤어지면 일순 죄책감이 든다. 내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은연중에, 내게 마음을 터놓고 친했던 사람들의 험담을 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고, 또 그게 돌고 도는 업계 종사자이기에, 어느 순간 나는 친한 동료가 경쟁사로 이직하면 이내 마음을 닫았는지도 모르겠다. 밥그릇 앞에서는 여유를 부릴 수가 없는지라. 내가 곧 나 자신의 bread winner (가장) 임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약간은 버겁게 느끼는 나이니까.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내게 가까운 비유가 있다면 나는 습관적으로 글을 쓰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위로와,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반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글 쓰는 걸 왜 좋아해요?'라는 질문을 듣자 그동안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또 이런 대답이 나왔다. 사립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6년 내내 숙제가 일기 쓰기여서, 일기를 매일 써서 '참 잘했어요' 도장받는 게 좋아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하루에 중학생 용 노트 한 페이지를 꽉꽉 눌러서 쓰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자발적으로, 지금까지도 산발적으로 혹은 주기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 훈련이 나도 모르게 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냥 쓰고 또 쓰다 보면 글이 즐거워진다. 독자가 생기고 책임감이 더 늘면 퇴고에도 더 노력을 기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가벼운 에세이니 그냥 술 마시며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식으로 쓰련다.


글이라는 건 신기해서 쓰다 보면 내 안의 가장 솔직하지만, 혹은 숨기고 싶었던 마음들이 나온다. 숨길 수가 없고, 애초에도 나는 그렇게 거짓말을 잘할 수 있는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못 된다. 글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냥 나 자신이 튀어나와 버린다. 화자가 1인칭 시점이든, 3인칭 시점이든. 별거를 결심했을 무렵 내 일기장에는 '이러다가 내가 나를 죽일지도 몰라'라는 식의 글귀가 있었다. 올해 재택근무를 하며 근 10년 동안의 일기장을 모아둔 커다란 바구니에 손을 대게 되었다. 평소라면 먼지가 쌓였을 그 작은 일기장 들 하나하나에는, 그 해마다 나름의 고민과 분투로 바빴을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거기에 적인 글귀 중에는, 피식 웃음 짓게 하는 것도, 눈물짓게 하는 것도, 이제 더는 내가 아닌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반대의 내가 지금의 나인 것도 있다. 삶은 그렇게 돌고 돈다. 결국 제자리를 찾아온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는데!' 하고 무릎을 칠 바에야,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거짓이 아닌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의 대화 주제 중 큰 축은 승진을 위해 몸을 '파는' 외국계 회사 근무 여성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것도 개개인의 선택이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그러는 건 좀 의외고 싫었다.. 는 취지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손사래 치며 싫어할 것 까지는 없는데, 그렇게 큰 실망감을 표시할 것 까지는 없었는데, 반대로 나는 '그녀'에게 어떤 연민을 느꼈던 걸까. 아니면 일말의 존경심이 있었던 걸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타인이 알 수 없듯 나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부 알 수 없다. 그냥 그렇더라도 표면상으로 내게 친절한 동료라면 굳이 미워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나는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비난하는 걸까? 오히려 강압적인 환경에 많이 놓인 나였기에, 더 강한 부정을 했던 걸까? 젠더와 성에 대한 나의 신념 혹은 경험 때문에 나는 남녀 관계가 너무 어려운 건 아닐지. 일기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쓰다 보니 이렇게 눈덩이처럼 글이 불었다. 나는 이전의 둥글둥글한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진심이 모두 진짜가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모두 변하고, 그렇게 제자리 (가 있다면)를 찾을 것이다. 나도 도로로 또르르 구르고 굴러 내 자리에 콕 박혀 제 역할 다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 쓰임과 역할을 다하고 충만을 느끼고 싶은데. 그냥 쉽게 말해 나는 성인도 아니고 아주 잘 난 사람도 아니지만, 일관성 있는 사람이고는 싶다. 솔직한 사람이고는 싶다. 자성하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하는 기도를 드리고 자야겠다. 그러면서도 쿡 하고 브런치에 도장을 찍고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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