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고민하는 워킹맘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도 안 하겠지만 경단녀는 절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크고 나이가 40이 넘어서야 알게 된 이 진리를 진작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얼마 전 남편과 술 한잔 하다가 언쟁이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남편은 최근 몇 달 동안 자격증 공부를 한다며 퇴근 후와 주말에 가족과의 시간은 반납한 채 도서관에서 지냈다. 우리는 외벌이 가정으로 남편은 40 이후부터 회사를 언제까지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며 많이 불안해했었다. 그러다가 자격증이라도 따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 한 두 달은 나도 이해했다. 가족들을 위해 일 끝나고도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자 나도 힘이 들었다. 초등학생이지만 아직은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아이들이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아빠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안쓰러웠다. 나도 두 아이와 매주 주말 아빠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에 점점 지쳐갔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남편에겐 내색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 지역으로 막 이사를 온 뒤라 더 했던 것 같다. 매주 주말 아이들과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자니 외롭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어딜 가든지 아빠와 같이 나온 집만 보였다. 왜 나만 이렇게 주말에 아이들을 다 떠맡아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5월 화창한 날씨는 이런 마음을 더 부추겼다.
그러다 며칠 전 남편의 시험이 끝나고 술 한잔 기울이며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하소연했다. 위로해 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남편은 반격하며 나섰다. 뭐 자기 하나 좋자고 그랬냐며 가족들을 위한 것인데 어떡하냐고. 그러다 비수를 꽂는 말 한마디를 날렸다. "그러면 같이 일을 하든지."
그 말 한마디가 너무 깊이 박혀 며칠이 지나도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일을 그만둔 것은 아이를 낳고 어쩔 수 없이 한 결정이었다. 남편이 더 원했던 것이기도 했다.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렇게 고생하며 다니냐. 너 하나만 그만두면 모두 편해질 것 같다면서.. 본인이 좀 더 벌면 된다고..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때는 자신만만했겠지. 나이도 젊었으니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걱정 따윈 없었을 것이다. 처자식을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한 방을 맞고 나니 머리가 띵했다. 그동안의 세월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아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경단녀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워킹맘들이 있다면 절대로 일을 그만두지 말라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첫째, 경력을 포기하고 보낸 세월은 절대 보상받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에 집중했던 시간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한 시간이 돼버린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에게 삼시 세 끼를 해 먹이며 공부까지 시켜야 했던 그 시간들은 이미 깡그리 잊혀 버렸다. 그러나 월급은 숫자로 찍혀 통장에 남는다. 그러니 부디 보상받지 못할 시간을 위해 경력을 포기하지 말라.
둘째, 자존감이 낮아진다.
일을 안 한다고 집에서 노는 것이 절대 아니건만, 시부모님께는 내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간 시부모님은 병원 가는 일, 장 보는 일 등등을 위해 평일 낮에 종종 부르셨다. 그럼에도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하고 몇 번을 불려 갔는데 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위축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돈을 못 버는 것이 자존감을 낮게 만들었고 불합리한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 부부가 현재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부모님 눈에는 일하며 돈 버는 당신 아들만 고생한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우리 부부를 볼 때마다 남편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힘들어서 어쩌냐.. 고생한다.. 하신다. 코로나로 격리할 때, 아이들이 아플 때 아이들은 온전히 내 몫이었지만 시부모님께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다.
셋째, 다시 일을 하려 생각하니 막막하고 두렵다.
일을 계속해왔던 상태였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어나갈 수 있을 텐데 나이 먹고 처음부터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늦은 나이는 없다지만 사회와 단절된 지 수년이 되었는데 겁이 안 날 수가 없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도 너무 막막하다. 그냥 등 떠밀려서 아무 일이나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다는 것이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데 겪어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누가 이야기 해 주지도 않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하루 종일 맡기더라도, 시터 이모님께 내 월급을 다 갖다 바치더라도, 아니면 친정엄마의 삶을 희생시키는 나쁜 딸이 되더라도,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를 시켜서라도 절대로 절대로 경단녀는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