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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Jun 13. 2021

3. 영원하다 라는 말

  인간들이 쓰는 언어 중에 상당수는 역설적이고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나는 그러한 단어에 대해 관심이 있다. 작업을 할 때도 그런 아이러니함을 주제로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객관적-주관적이라는 단어도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용어이다. 결국 어떤 주제를 삼아서 분류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사회 안에서 규칙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이라는 것을 자주 혼동한다. 일반적이라는 단어 역시 상대적인 단어이다. 수에 비례해서 정해질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정의가 바뀔 수 있는 용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단어에 따라서 서로를 배척하고 나눈다. 


예를 들자면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있겠지만 내가 쓰고 싶은 단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단어를 설명하자면 ‘영원’이라는 단어이다. 영원히, 영원하다, 영원토록 등으로 쓰이는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만든 단어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가진 불안함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단어이면서 어느 시대, 지역, 인종을 가리지 않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단어일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라는 문장은 어릴 때부터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된 문장이다. 아주 빈번하게 생각해보았다, 정말 영원한 것은 없는지? 적어도 나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정신적인 면을 영원한 것으로 말하곤 한다. 정신은 영원하다, 사랑은 영원하다, 믿음은 영원하다 등이 그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이 말을 수용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는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할 때, 그 대상은 존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존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에게 인정하기 싫은 가장 현실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면서 느끼는 가장 오래된 것은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행성 혹은 항성 등인데, 그것들 조차 수명이 존재한다. 물론 내가 그것을 볼 수는 없겠지만 결국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영원히 존재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이라는 단어를 역설적으로 더 사용한다. 그만큼 신뢰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 단어에 대해서 조금 더 지켜볼 예정이다. 영원히 그 의미가 변하지 않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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