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내 Nov 28. 2020

2. 예술 정의의 모순 (19.8.30)

 어차피 (당신이) 이 글을 다 읽은 후에도 (예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가장 큰 주제 이자 결론은, 예술은 알 수 없다, 이니까. 흔히 예술에 대해 잘 안다는 사람들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미스터리한 사람들이다. 약 3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형태의 혹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봐왔다. 그들과 그 형태들은 각자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느낀다. 그 모든 것이 예술이면서 동시에 예술이라고 강요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도 든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정의와 형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수보다 헤아릴 수없이 많은 예술이 여태까지 존재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예술에 관해서 전문가는 없다. 그것은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해 적힌 혹은 남겨진 것들로 그 안에서 정의하는 것일 뿐, 그 안에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한 어떤 것은, 현실의 예술과 정의되는 예술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와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모든 사람들 안에서 존재하여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고 말하고 싶다. (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 대다수의 예술을 안다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을 아는 것이 아니라 ( 예술이라고 추측한 ) 본인이 공부한 것을 아는 것이다. 예술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 나 역시 예술을 정의하고 있다. 예술을 정의할 수 없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굉장히 모순적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 의견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 글은 알려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느껴온 바를 적은 것이다. 그것 자체가 예술인 것인지는 각자의 의지이자 생각이다. 말하자면 이 생각이자 주장은 최소한의 인원인, 나 하나 정도가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글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남기는 것은, 이 글은 내 예술적인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면서 최대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예술을 계속해서 남겨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생각이 나의 원천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상상력이다.)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방식이다. 예술은 그런 생각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형식이다. 그렇다고 하면, 나는 예술가 이전에 생각가 ( Thinker – 철학가가 아닌 순수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라고 생각을 한다. 


이전 02화 1. 나에게 예술이란 (18.8.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