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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Nov 29. 2020

4. 예술의 존재 (19.10.2)

 공황장애 가까운 증상을 겪는 동안, 내 안에 예술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담아둘 수 없었다. 그럴만한 여유나 경황도 없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두 가지 길에 대한 선택만 존재했다. 내가 아무런 근심 없이 할 수 있는 게임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애니메이션도, 그리고 미술 전시회 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힘든 상황의 사람에게, 혹은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존재할까?


 흔히 예술가들 혹은 예술 종사자들은 말한다.

“ 예술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예술은 어느 곳에 나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이라는 것은 형체보다는 관념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서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관념 자체를 인지하지 않고, 의미 자체가 없다면? 예술에 대한 관념이 의미가 없는 사람에게 제 아무리 고가의 조각이나 그림을 보여준들 의미가 없다. 그 사람에게 그것은 예술이 아니게 된다. 예술은 기본적인 사람의 생활이 영위되고 나서야 생기는 사치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치는 방탕이 아닌 여유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예술은 공부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더 공부하고 더 배운다고 예술을 잘 안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며, 굉장히 권위적인 생각이라고 감히 말한다. 오히려 배우면 배울수록 갇히는 것이 예술이며, 글로 배운 예술이 된다. 물론 그것 역시 예술의 한 방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을 대표할 수는 없다. 적어도 예술가라면 예술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술가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다. 예술 속에 예술 학문이 있을 수 있지만, 공부 안에 예술이 있지는 않다. 예술은 학문 혹은 공부라는 단어보다 더 거시적이고 큰 범위의 단어다. 공부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이다.


 내가 느끼는 현실의 예술과 학문으로서 예술은 정말 많은 괴리가 있다. 나 역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술을 더 깊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해 프랑스 유학을 했다. 하지만 내가 예술에 대해 깊게 알게 된 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교수들에게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교수들의 학문이 아닌, 교수-그 자체를 통해서 내가 어디서 예술을 알아가야 할지가 명확해졌다. 물론 명확하게 말하면 학교 안에서 배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곳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교수들의 아주 얇은 가르침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히 느꼈다. 애초에 교수들이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환경도, 수준도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과연 교수들이 예술학도들을 양성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그들에게도 삶의 유지가 최우선이다. 왜냐하면 삶의 영위 다음에 있는 것이 예술이니까. 그들은 삶의 영위와 명예를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그 자리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자보다 자신에게 더욱더 의미가 있는 자리가 그곳이다. 그곳에 예술에 대한 가르침은 2차적인 것이다. 삶이 먼저고, 그다음이 가르침이다. 들어가기 어렵고 배우기 쉽지 않은 곳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더 두드러질 것이다. 그 안에서 과연 진정으로 예술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안보다는 밖을 다니며 예술에 대해 생각했다. 전시회를 끊임없이 다니며 작가들의 방식을 배웠고, 길을 다니며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현실 안의 예술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으로 귀국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녹록지 않은 내 현실을 보면서 예술에 대해 생각했고,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그런데 현실은 그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현실은 돈’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느낀다. 세상에 돈을 떠나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 중의 극소수일 것이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은 그 어떤 직업보다 더욱더 연관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원시인들이 돌이나 동굴에 새기는 벽화가 아닌 이상에야 작업을 하려면 무엇인가를 사야 하니까. (사실 이것도 좋은 예시가 아닐 것이라 느낀다. 그들도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벽화에 작업을 했을 수도 있으니.)


 두 번째로, 모든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물론 예술이라는 행위를 하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술을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는 않는다. 예술이 삶을 바꿔주고 힐링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한정된 의미의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예술에 대해 생각하느니 조금이라도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고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되어야 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


 어째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너무나 가벼운 생각이다. (그런 의미라면 부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 밑바닥에는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무조건 적인 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 안에서 예술가라고 인정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여기서 인정은 사회적인 인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러한 전제가 있음으로 예술은 고귀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무나 인정받기가 힘든 데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정작 예술가들은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인생을 걸고 작업을 해야 함을 느낀다. 그런데 진정으로 되기가 쉽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이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것이 아무리 쉽고 편하다고 해도 말이다. 어떠한 일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우연하게 그것이 맞아떨어져서 하는 것이지, 남들보다 수준이 높아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 혹은 예술 종사자가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예술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라고 말할 만큼 예술이 가치 있고 고귀한 것 또한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순간부터 본인의 가치가 더 높아질 뿐이다. 현대에서 예술가는 사회 안에서 가치라는 것이 있어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직업으로 점점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전에는 안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예술은 상대적 가치가 높을수록 잘 나갔고 전설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에서 가치는 더욱더 인위적이게 변하는 것 같다. 일반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갤러리나 미술관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 그냥 그런 예술가가 된다. 그들은 대부분 좋은 학교와 좋은 예술 환경을 거쳐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환경과 기준 때문에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이 된다. 현실은 그런 환경을 만드는 갤러리나 미술관이 예술과 예술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나 전시를 할 수는 없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 높은 기준과 안목이 기본으로 전제된다.) 진정 그런 것인지 의문스럽다. 잠깐 예술을 하고 잠깐 참여한다고 해서 예술가가 되는가? 그저 홍보를 위한 문구에 지나지 않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나는 남들보다 그다지 잘나지 않아서 예술을 한다.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현실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계속 예술이라고 믿어 온 것들을 해왔으니, 하고 있다. 이제 와서 내가 그들처럼 현실을 버티는 것은 쉽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방법 또한 아니다. 내가 가장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 남들보다 잘해서가 아닌, 다른 것보다 잘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이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치스럽거나 여유로운 변명으로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학문 사이의 예술은 괴리가 있다. 나는 현실의 예술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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