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진다. 전보다 점점 더 평범해져 간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함과 삶의 모호함은 존재한다.
사실, 작년 2018년까지 있었던 프랑스 생활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상적인 삶을 살다가 온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곳, 한국에서 나는 현실을 볼 수 있다. 나를 비롯해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느끼고, 소속감이 있기 때문에 책임감과 의무감을 더욱더 느끼게 된다. 그것이 무작정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정작 프랑스에서 느 그것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프랑스에서 나는, 예술만을 보려고 노력했다. 모든 남는 시간을 ‘미술 보기’에 할애했다. 파리의 미술관을 전부 찾아서 다녔다. 사는 지역은 파리 아래의 3시간 정도가 걸리는 도시였지만,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을 올라와서 미술관을 다녔다. 왕복 6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크게 고려대상이 되는 점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미술을 보기를 원했고 배우기를 원했다. 학교에서는 알려주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새롭고, 다른 시점을 얻기를 원했다. 그런 것들은 학교를 나오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미술학교 안에서 예술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곳 안에서 예술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언제인지, 나는 파리의 작은 사진 미술관인 쥬 드 폼 (Jeu de Paume)에서 사진 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한 노인 분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덕분에 잘 몰랐던 그 사진 안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이 학교에서 몇 시간 동안 배운 미술 역사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역시 몇 백 시간의 미술 수업보다 단 분 몇의 그 당시가 확실하게 기억난다. 이것은 아주 단적인 예일뿐이고, 프랑스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많은 경험들이 이와 같았다.
예술은 예술이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들어야 더욱더 가치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것은 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를 잘 안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잘 아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