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살을 더 먹었다. 그 이후,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나이에 대한 상실감이나 허무감은 나로부터가 아닌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가고 있다. 미약하게나마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나를 아는 주변 사람은 달랐다. 전혀 가망성도 보이지 않고, 예술로 밥도 벌어먹지 못하는데 그냥 다른 일이나 알아보라는 소리가 나왔다. 예술에 대한 목적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재한 사람에게 예술의 목적을 설명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예술가만큼 쓸모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념을 가진 대다수에게 예술가는 사회 안에서 그다지 유용한 존재들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에서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그들 혹은 사회의 무관심하고 직설적인 한마디 한마디가 많은 시간 동안 버텨온 예술가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느낀다. 모든 사람이 예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예술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축구선수가 될 수 있다 라는 소리만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모두가 축구선수를 가치 있게 생각하진 않으니까. 예술도 그렇다.
이제는 예술이 모든 이의 마음에 있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아야만 할 것 같다.
확실히, 예술은 그들만의 리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이해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억지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예술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 두서없는 글의 결론은, 예술가는 주변의 환경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예술가는 이해받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이해보다는 본인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술가의 적들은 남들이 아닌 주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기반이 닦이기 전까진 계속해서 공격을 할 것이다. 걱정과 주변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런 공격은 작업에 대한 비판과는 격이 다른 치명상으로 다가온다. 예술가가 버티기 가장 어려운 요소는 형편보다 이러한 주변의 공격이다. 이러한 공격만 없더라도 예술가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유라는 것에 대해 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사치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여유는 필요하고, 예술가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유는 예술가에게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닌 작업을 진전시키는데 엄청난 원동력이 된다. 그것을 노는 것이다 라는 말로 예술가를 폄하할 필요가 있을까? 어떠한 상황에서든 예술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여유를 존중해줄 않는 사람에게 예술가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예술가는 여유를 가지고 작업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에게 예술이라는 것을 뿌리치고 사는 것은 그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