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론가 일기]고3 스트레스를 날려줘, 펜데레츠키!

by Anne

개평론가입니다.


지금 신촌의 한 모임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신촌의 거리에는 수능을 끝낸 고3 학생들이 넘쳐나는군요.

갑자기 제 고3때 생각이 나네요.




때는 바야흐로 200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저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대.학.진.학.


읭? 그건 당연한 거 아냐?


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대학갈 생각이 별루 없었습니다.

머리가 안 좋고 엉덩이도 가벼워서 내신점수가 아주 엉망이었거든요.

그나마 언어 영역만 늘 1등급이었고 나머지는 폭망.

어느 학교에나 있는,

공부는 못하지만 건강하고 잘 웃어서 선생님들이랑 잘지내는 흔녀1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친하게 지냈던 교회전도사님이

저에게 '너는 맘만 먹으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고 셨는데

별 특별한 말도 아니건만 거기에 꽂혀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저는 수험생 모드에 돌입합니다.

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독서실을 끊고 싶었는데 당시 집에 돈이 정말로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쓰면서 눈물 나는 게

같은 반 친구들이 돈을 모아 첫 독서실 비용을 내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감사한게, 선생님들이 제 각오를 믿어줬어요.

바로 어제까지 탱자탱자 놀던 학생이 갑자기 "저 대학 가려고요"하면 비웃을줄 알았는데

선생님들이 "아유, 그래! 생각 잘했다!"하시며

문제집들을 모아주시고 틈틈이 과외 선생까지 자처하며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난생 처음해보는 공부는 빡세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었어요. (<-인생 첫 공부였음)

하지만 문득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오기도 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도와주는데 실망시키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압박으로 다가왔죠.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도착한 저는 무심코 TV를 켰습니다.

쓰러질듯 피곤하여 자야 정상인데, 그날따라 너무 분위기 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운명의 곡을 만나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9XEhpWUGrg


당시 밤늦게 방영하던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에타'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서울 바로크 합주단의 연주로요.

제가 채널을 돌리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 교회 성가대 지휘자님이 TV 속에서 열심히 첼로연주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이 곡,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긴장감이 최곱니다.

난생 처음하는 공부와 현실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도 맘도 터져버릴 것 같았던 19살 소녀에게,

이 곡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정말 남달랐답니다.

마치 존재 자체가 리셋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날 이후

신기하게도 저는 모든 걱정을 접어둔채로 짐승같이 달릴 수 있었고

명문대는 아니지만 인서울 턱걸이에 성공합니다.

저는 매우 만족하였고

재수를 권유하는 선생님들에게 '두번의 기적은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누가 들으면 서울대 붙은 줄...)




혹시 펜데레츠키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lzj3SRhdneI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252293&memberNo=42430508&requestQueryString=rid%3D1439%26attrId%26contents_id%3D124555%26leafId%3D1439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입니다.

작년인 2018년은 펜데레츠키가 출생한 지 85주년이 된 해였는데요.

폴란드에서 국가적으로 그의 85주년을 성대하게 기렸을 정도니

얼마나 사랑받는 음악가인지 짐작이 가시죠?


뿐만 아니라 펜데레츠키의 85주년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라모폰은 펜데레츠키의 음악을 담은 앨범을 발매합니다.

모든 곡에 바이올린의 여제 안네 소피무터가 참여를 했고요.

아래는 그와 관련한 펜데레츠키와 안네소피무터의 인터뷰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oX8fjAlBRag

펜데레츠키 선생님은 여전히 정정하시군요.

암튼 클래식 음악계에서의 펜데레츠키의 위상이 이 정도입니다.


펜데레츠키의 대표곡을 꼽는다면

역시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들 수 있겠는데요. 한번 들어보실랍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Pu371CDZ0ws

펜데레츠키를 좋아한 지 14년이 되어가건만 여전히 이곡은 어렵네요 어려워.

그래도 이제는 끝까지 들을 수는 있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기겁을 하면서 껐던 기억이 납니다.


펜데레츠키는 대한민국이랑도 인연이 깊어요.

1991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광복50주년 기념작품을 위촉받아 만든 작품이

교향곡 제5번 ‘한국'이거든요.

바로 이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pQErtiCkmE

1992년에는 KBS교향악단의 지휘를 직접 맡아 이 곡을 초연하기도 했는데요.

이 작품을 살펴보면 우리민요 ‘새야 새야’의 선율을 주제로 사용했고요.

전통악기인 편종을 관현악 편성에 넣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5년에는 서울대학교가 펜데레츠키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했어요.

서울대학교가 음악가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한 건 그게 처음이었다는군요.

펜데레츠키도 한국을 좋아해서 때 되면 종종 들러서

클래식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답니다.


2016년에 폴란드의 오케스트라 신포니아 바르소비아와 함께 내한했을 때

저는 합창석에 앉아 그의 지휘로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에타'를 들었는데요.

그 감격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합창석에 앉았던 한 청년이

정말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침을 하는 바람에ㅠㅠ

분노한 다른 관객들이 인터미션때 그 청년을 에워싸는 해프닝이 있었지요.


여담이지만

여러분..참다 참다 기침이 나오면 공연장에서 그냥 나가는 게 예의입니다.

아니면 연주회장에 커피는 안 되지만 물은 갖고 들어갈 수 있으니

물이랑 사탕을 챙겨주세요. ㅠㅠ

하다못해 입을 손수건으로 막고만 있어도 기침 소리는 훨씬 줄어든답니다?


예술의 전당 로비에 기침방지용 엠오이칼 캔디있거든요.

그거 진짜 기침 참는데 직빵이니까 한 7개 쟁여놨다가

목구멍이 간지러우면 입에 쏙 넣어주시길.

(너무 많이 쟁이면 할아버지 관객들한테 한소리 듣습니다.)


아무튼간에

85세지만 여전히 정정해보이는 펜데레츠키의 영상을 보니

이제 슬슬 다시 한국을 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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