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론가는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제가 얼굴에 기름이 참 많거든요. 덕분에 주름이 거의 없지요.(대신 트러블은 많음)
하지만 최근 왼쪽 팔자주름이 오른쪽에 비해 확연히 길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팔자주름을 따라 아이크림을 발라보았는데,
정확히 그 라인을 따라 별자리처럼 뾰루지가 났지 뭡니까. 흑흑... (영양과잉공급의 폐해)
소화기관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조금만 급하게 많이 먹으면 트름이 어찌나 나오는지 속상합니다.
육체의 노화는 어쩌면 이렇게도 하루하루 근면하게 진행되는 것일까요.
반면 저의 정신은 하루하루 근면하게 퇴행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정신차리자는 의미에서 '진짜 어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영원한 개평론가의 롤모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쌤 이야기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그저 '전설적인 연주자'라고만 정리하기엔
정경화 선생님이 세운 업적은, 그리고 지금까지 밟아온 길까지도 너무나 위대합니다.
제가 고3때 처음 들었던 정경화 쌤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습니다.
1970년 런던의 데뷔무대죠.
아내의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이작 펄만의 대타로 선
이날 연주가 대성공을 거두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커리어가 화려하게 꽃을 피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zq55kcQI
런던데뷔 연주는 아니지만 그 당시 연주니 좀 들어보셔요.
그 당시만 해도 여자 솔로바이올리니스트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었답니다.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수한 미국 콩쿠르만 해도,
사실 정경화 쌤이 더 뛰어난데
여자라 공동우승을 준거란 이야기가 지금도 나올 정도니까요.
실제로도 유례없이 결승연주를 다시 치뤘고요.
진짜로 뻥이 아니라!!
정경화쌤이 없었다면 안네 소피무터도 힐러리 한도 김수연도 클라라 주미강도 없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면 정말 날카롭게 벼려진 칼을 보는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도 완벽주의 연주자로 유명하셨죠.
워낙 성격이 대차서 지휘자 솔티랑 기싸움한 일화도 유명하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xBw_qq9UVCk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멘델스존 연주예요. 정경화 쌤, 참 미인이셨죠?
한국이 아시아의 작고 가난한 나라였던 시절
정경화 선생님의 행보는 많은 국민들에게 힘을 줬던 소식이었대요.
제가 철없던 시절 안네소피무터가 정경화쌤보다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엄마한테 등짝 엄청 두들겨 맞았거든요.
"이눔 기집애 니가 뭘 알아! 귀씻고 다시 들어" 이러셨는데...
하지만 당시 인간 정경화의 속마음은 어땠을까요?
최근 <조선비즈>의 김지수 기자님이 정경화 선생님과 진행한 인터뷰를 읽고
정말 눈물이 많이 났는데요. 그 대목은 이렇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두려웠어요, 나는. 공포의 우산 속에서 살았지.
사회의 기대에,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날까, 그게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늘 겁에 질려 있었어. 17살 때 스승인 미스터 갈라미언 손에 이끌려 뉴욕서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섰어요. 무대에서 내려와서 알았지. 내가 어마어마한 걸 했다는 걸.
아직도 기억나는 게 호텔의 벽지야.
호텔에 와서 벽지를 보고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이게 내가 살아갈 인생이구나.’
음악은 관중들에게 주는 거고, 내가 받는 박수갈채는 금방 지나가요.
그렇다면 나한테 남는 건 뭐냐? 결국은 내 악기 내가 사랑하는 소리…
알겠어요? 이게 얼마나 크레이지 러브냐고?
그 운명을 알고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 정경화 선생님은
이후
번아웃, 손가락 부상, 부모와 스승의 죽음, 그리고 결혼과 출산 등 많은 일들을 겪으셨지요.
특히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치명적인 손가락 부상을 당했지만
정경화 선생님은 5년의 공백기 동안
줄리아드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머리로 연주하는 훈련을 하셨대요.
나는 연주 소리가 귀로 다 들려요. 머릿속 연주가 정확하게 나오죠.
내가 받은 축복입니다. 그때 바흐의 무반주를 연습했죠.
만약 악기를 쓸 수 있었다면 게을러서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도 안 했을 거야. 하하. 바흐는 특히 하모니가 너무 까다로워.
그 복잡한 무반주와 파르티타 6개를 이 나이에 손으로 연습했다면 못했겠죠.”
잔뜩 벼려져 머리카락을 갖다대기만 해도 베일 것만 같았던
날카로운 위엄은 세월에 의해 마모됐지만
여전히 정경화 쌤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왔답니다.
바로 2018년 9월에 열렸던 정경화-조성진 듀오 리사이틀에서요.
단연코 2018년 있었던 모든 공연 중 화제성이 가장 높은 공연이었어요.
전설과 천재의 만남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서울 예술의 전당 티켓은 이미 2달 전부터 매진이었어요.
다행히 구리에서 하는 공연 티켓을 구하게 되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
구리 아트홀에 갔는데 BTS 공연 온 줄 알았잖아요.
어린 여성 팬 분들이 넘나 많은 것.
이 날 정경화 선생님과 조성진군의 호흡은 아주 기가 막혔는데
클라이막스는 역시 프랑크 소나타였습니다.
조성진과 함께 한 버전은 아니지만 이 곡 한 번 감상하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O1jhHCumT6c&t=874s
이 프랑크 소나타 하기 전에 선생님은 더우셨던지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으셨어요.
손수건 치고는 좀 컸는데
땀을 닦은 수건을 어디 둘까 고민하며 허둥지둥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관객들이 다같이 웃었답니다.
음이 조금만 잘못되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던
서릿발 같았던 정경화쌤이
오랜 시간이 흘러
그토록 수더분한 모습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날이 올줄 누가 알았을까요?
사실 제 뒤에 진상부렸던 나이 든 부부가 있었거든요.
연주하는데 자꾸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사탕을 꺼내드시고는
조용히 해달랬더니 적반하장으로 짜증을 냈던 분들이요.
근데 그 분들 대화를 듣고 저는 눈물이 날 뻔 했어요.
(정경화 선생님이 무대 위에서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하심)
남편: 선생님이 뭐라셔?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것 같았음)
부인: (남편의 귀에 대고) 으응. 선생님이 방금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어.
남편: (울컥하며) 아이구. 선생님이 이제 무대에서 그런 말씀도 하시는구나.
아이구, 선생님, 덕분에 저희도 행복합니다. (막 아이처럼 박수치심)
그날 정경화 선생님은
조성진에게 홀로 앵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무대에 남겨 놓고는
호탕하게 머리를 젖히고 웃으며 무대 뒤로 사라지셨어요.
진짜 힙스터란 저런 거 아닐까 싶었어요.
운좋게 천수를 누려 제가 저 나이가 됐을 때
저런 '진짜 어른'들의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상상만으로도 웬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