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론가 일기] 통영의 클래식 힙스터들

by Anne

안녕, 개평론가입니다.


흔히들 클래식을 어려운 음악, 고상한 음악이라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면 되게 귀엽답니다.

특히나 통영의 클래식 힙스터들의 사랑스러움은 정말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지난 2018년 5월, 통영국제음악제를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통영국제음악제 2018 홍보영상 한 번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3NSL2Cxcibs

통영국제음악제는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 음악제 중 하나예요.

1999년에 ‘윤이상 음악의 밤’과 2000년.2001년 통영현대음악제가 시초였고요.

2002년 제1회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하며 대규모 음악 축제로 발전하게 되지요.

2003년부터는 매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리고 있는데요.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3년 주기 원칙을 따르고 있답니다.


저는 루돌프 부흐빈더 할아버지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들으러가기 위해서 간 것이었어요.

루돌프 부흐빈더는 1946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데요.

이 할아버지의 주특기는 베토벤! 1982년 발매한 첫번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집이 아주 유명합니다.


할아버지 프로필을 찾아보니

불과 5세의 나이로 최연소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대에 입학했고

10세에 데뷔무대를 가졌다네요. 이게 가능한가.. @.@??

이후 유명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고요.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열심히 연주여행을 다니고 계십니다.

최근 통영에 자주 오셨어요. 2018년에만 오신 게 아니라 2017년에도 오심.


루돌프 부흐빈더의 연주 한 번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ZJIRTmt7_e4



부흐빈더도 부흐빈더지만

저 태어나서 통영에 처음 가봤거든요.

와, 볼수록 매력이 쩌는 동네라.

특히 통영국제음악당은 뷰가 끝내줘요. 아름다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뷰보다 힙한 건 바로 통영 할머니들!

할머니들 대화 들어보면 정감어린 말투에

내용은 와 그리 교양이 넘치노!


지휘자가 그것도 못 잡아내모 그기 지휘자가?
"니 마지막 날 연주 보나? 안보나?(소리가 갑자기 커짐)
마지막이 진짠데? 내나 그 황젠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
그걸 안보나?!!! (카랑카랑)"


황제는 참고로 이런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7edk-zaS2Q


할머니들의 대화를 옆에 듣고 있던 저는 괜히 제발이 저렸습니다.

당시 인터뷰 일정 때문에 마지막 날 '황제'를 보지못하고 서울로 돌아가야했거든요.


근데 통영 할머니들 정말 패션도 멋있으신 게

염색 안 한 은발의 단발 머리를 내추럴하게 풀고,

밝은 색 정장을 갖춰입고 힐을 신고 곧은 자세로 또각또각 걸으셨어요.

브로치도 이쁜 걸로 다셨더라고요.

서울 처자가 먼 길 왔다며, 상냥하게 옆자리도 내어주셨답니다.


통영 할머니들만 고상하신 것이 아닙니다.

통영국제음악당 옆 스탠포드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음악당으로 건너간 저는

매표소 직원분에게 기존에 예매한 티켓을 맨 앞 줄의 것으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차액을 내겠다고요.

그 직원 분은 스무살 갓 넘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굉장히 앳된 여자분이셨는데요.

제 요청을 듣더니 갑자기 우다다다 랩을 하시는 겁니다.


"손님! 오늘 부흐빈더 선생님이 피아노 소나타를 치시니까여.
건반 움직이는 걸 보시야 되잖아여?
근데 손님이 고르신 자리는
부흐빈더 선생님 손가락도, 건반도, 아예 안 비는 자리라서여.
그라믄 오히려 사이드 자리에서 보시는게 날 수도 있는데여.
근데 문제는 (손가락으로 짚으며) 여그 펜스가 있어여.
제가 손님이라면여. 여그 앉겠어여!!


그러면서 추천해주신 자리는

무대를 기준으로 다섯번째 줄 사이드 자리였습니다.

저는 그저 "예.예. 예매만 해주십쇼. 앉으라시는데 앉겠습니다"했지요.


그래서 거기 앉았는데

부흐빈더 할배 손가락과 피아노 건반은 물론 속눈썹까지 잘 보이는

엄청난 명당 자리였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고 사랑스러운 분입니까?!


통영 관객들은 객석 매너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 가득 띄우고 등장한 부흐빈더 할배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기침 소리 한 번 나지 않았어요. 숨소리도 안 들렸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그렇게 수많은 공연을 봤는데도 이런 매너는 본 적이 없었어요.

심지어 곡이 끝나고 6초 뒤

여운을 온전히 즐기고 난 후에야 비로소 박수가 터져나왔다니까요.


모든 연주를 마친 부흐빈더가 비틀거리며 인사했을 때는

공연장이 떠나가라 큰 박수와 환호성을 선사한 것은 물론이고요.

그래서 부흐빈더 할아버지도 신이 나서

긴 앵콜을 두번이나 하고 황급히 사라지셨더랬죠.

3일동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치는 일정이라

첫 날에 너무 달리면 안 되는데, 부흐빈더도 신이 났던 거죠.

루돌프부흐빈더.jpg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비하면 아주 작아요.

그래서 앞쪽에 앉으면

일흔이 넘은 부흐빈더 할아버지,

비틀비틀 천천히 걸어나온 그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첫 건반을 치는 순간,

그의 옆얼굴에 떠오른 소년같은 미소를 볼 수 있어요.


수백번, 수천번을 쳤을 텐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듯

행복한 모습으로 선율 속을 유영하는 연주자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연주가 끝난 후 힘겹게 일어나 관객을 향해 인사하는

나이 든 피아니스트의 눈동자를 볼 수 있어요.

그 흐뭇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박수를 쳤던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연주자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교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그 아름다웠던 통영 첫 방문 이후

저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매년 한 해 한 번씩은 꼭 통영에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답니다.

올해도 꼭 갈거예요. 갈 수 있겠죠? ^.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평론가 일기] 날카로운 인생 첫 연주회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