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로 밥 짓기
D+13 오늘도 덴맑음.
2주가 거의 되어가면서 파스타를 자주해먹었는데 파스타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게 내 혀가 느꼈지만 아무래도 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왔던 냉장 밑반찬들도 10월 중순까지 유통기한인지라 먹어야 했다. 다각도로 내가 밥을 먹어야 한다는 합리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이 밑반찬들도 안 가져오려고 어머니한테 뭐 그런걸 챙기냐고 했는데 챙기길 잘했다, 역시. 연륜의 바이브.
냉장고가 없던 임시숙소에서도 한식생각이 안나 그냥 가방에 넣어놓고 숙소에 놓아뒀는데 상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기우였지. 덴마크는 나의 생각보다 냉장상태였다.
여튼 밥을 먹으려는데 취사를 알려줄 밥솥이 없었다. 저번에 캠핑갔을 때 냄비밥을 해먹었던 것 같은데 느낌이 가물가물했다. 보관장소 역시 애매하기 때문에 1인분만 해야했는데 영 불안했다. 이번엔 기우가 아니였다. 냄비 바닥을 시꺼멓게 태웠다. 후.. 그 날 오후는 냄비를 숟가락으로 긁으며 탄음식을 긁는 숟가락 살인마로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는 중불로 은근하게 끓여냈다. 죽이 되었다가 그럴싸하게 밥이 되었다. 다 컸다. 짜식. 마트에서 고기를 사와서 밑반찬에다가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렜다.
이 말은 정말 내가 여기서 살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의식주에서 주가 해결된지는 꽤 되었지만 식까지 해결되면 3분의 2가 적응을 했다고 본다. 살기만 하는 것은 적응이 아니지. 익숙하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