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도 전에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다
일단 뭐라도 쓰지 그러니
제일 처음 읽어 본 글쓰기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살면서 얻은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라는 저자의 글은 글 좀 써 볼까 하는 용기를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글을 쓰기 전에 일단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움과 상처를 남긴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시간도 내 시간이고, 나는 그 시간을 지나 성장했다." 이하루의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속 글이다. 잘 살지 않은 나도 글을 써 봐도 되겠구나 싶었다.
<아몬드>의 저자 손원평은 작가의 말에서 "한때는 내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것이 작가가 될 깜냥이 못 되는 거라 생각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었다."라고 말한다. <아몬드> 속에 등장하는 윤재의 엄마는 작가가 꿈이었지만 "인생을 할퀴고 간 자국들을 차마 글로 쓸 수 없어" 작가를 포기하고 헌책방을 운영한다.
막상 내 이야기를 글로 쓰려니 손원평 작가와 윤재의 엄마 그 둘의 어느 중간에 매달려 있음을 느낀다.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못 해본 만큼 힘들고 아픈 경험도 없었기에 부족함 없이 평온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글로 쓰고 싶은 벅찬 진실도 없고, 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상처도 없는 내가 무슨 글을 쓰겠냐고 말이다. 훅훅 잘 읽히는 가벼워 보이는 에세이마저도 저자만의 좌절과 극복에 따른 깊은 철학과 감동이 담겨 있었다. 그런 삶의 고통을 갈아 넣어야지만 글이 나온다면 차라리 영원히 단순한 독자로만 살고 싶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공개하면서 혹시 가족이나 지인이 보게 될까 봐 몰래 쓴다. 대단한 내용도 없는데 지나치다 싶어 혼자 웃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글감에 대한 자기검열을 거쳐 보니, 절대 쓰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불편한 과거와 현재를 새삼 보게 된다.
비밀이 어찌나 많은지 혹시라도 가족들이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지겠다 싶은 이야기 투성이다. 부모님 이야기는 내가 불효녀라는 손가락질을 자처하는 일들이 많아 불편하다. 자라온 환경이나 직장 생활은 엄청 고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네이트 판에 올라갈 만한 막장스러운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정도면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제목 하나 잘 뽑으면 포털 메인에 올라서 불운의 아이콘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심지어 귀하게 컸다는 말을 듣던 시절을 떠올려도 외적으로 풍족했을 뿐 내적으로는 부족했던 방황의 나날들이었다.
논리적이면서도 웃기는 글을 쓰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 남들보다 힘들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위로받는다는 것이 미안했고, 나의 상처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나의 가족과 지인이 내 글을 보고 뭐 이런 것까지 글로 썼냐고 내 등짝을 때릴까 봐 못 쓰는 것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은 인생,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인생이어서 쉽게 글감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억지스럽고,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다니. 살면서 내가 읽은 소설들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환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김영하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책 속에는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 나오는데, 그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복잡하고 비상식적인 이런 한계 가득한 삶이야말로 진짜 인간답고 평범한 삶이고, 글 쓸게 많은 삶 아닐까. 다만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이 많은 글감들을 특별한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