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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Jun 28. 2021

마흔에 첫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길을 달린 날

"으악! 내 얼굴..."

거울을 보니 얼굴이 새까맣다. 큰일이다. 6년 전 첫 번째 복직했을 때 보는 직원마다 살쪘다 그래서 듣기 싫어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 복직하면 폭삭 늙었다는 소리를 주구장창 듣게 생겼다.


이 새까매진 얼굴과 팔 다리, 끔찍하게 싫은 진해진 기미뿐 아니라 손바닥에는 물집까지 생겼다. 안 그래도 못생겼는데 손바닥까지 못생겨지고 싶지 않은데 망했다.


오늘도 하루종일 너무 돌아다녔나 보다.



한 달 전 남편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다. 휴직하고 돈 한 푼 안 벌면서도, 사고 싶은 건 빚을 내서라도 스스로 샀지, 남편에게 뭘 사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내가 자전거를 산다는 것은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어디 땅을 산다거나, 어디 아파트를 산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생소함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 달라고' 말하며 매장에 같아 '가 달라고' 말했다.


결혼 9년 차, 굉장히 독립적으로 살아오던 내가 신용카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자고 하자, 의아한 듯 날 쳐다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다음 날 퇴근하자마자 바로 가보자고 하더니 세단에 실을 수 있는 접이식 중 제일 저렴한 자전거를 구입했다.


​"한 번 타보고 가져가셔야~"

자전거 매장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장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말했다.

"아, 와이프가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

남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말했다.

"아예 못 타요 아예!!"

"하하하하하하하하" 점잖던 사장님께서 당황하신 듯 머뭇거리다 호탕하게 웃으셨다.

남편과 아들이 좀 창피해 하는 듯 보였으나 사장님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았다. 내가 몸 개그를 하다니!




나는 자전거를 비롯한, 모든 신체와 관련된 활동을 아예 못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체육을 싫어했고, 체력장은 늘 5급이었다. 달리기는 준비 시작~하는 "땅!" 소리에 놀라서 스타트부터 꼴찌였고, 달리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운동회 전 날은 비가 오기를 아무거나 붙잡고 기도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겁은 지나치게 많아서, 플라잉 요가도 매달려 있는 기분이 어지럽고 무서워서 세 번 가고 포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액티비티가 없는 하루 종일 걷는 관광 위주로 선택했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만 봐도 소름이 끼치고, 아이가 스케이트보드 수업받는 것을 지켜볼 땐 무서워서 심장이 콩닥콩닥한다.


​그런 내가 오늘 4대강 국토종주 충주 탄금호 자전거길을 달렸다.(다른 라이더들이 보기엔 달리는 것처럼 안 보였겠지만) 아침까지 분명히 우울했는데, 그런 기분은 금세 사라졌다. 자전거길을 달린다는 건 넘어지기 싫어서 잡생각을 절대 못하는 우울함이 금지되는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는 건 초여름에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들을 추월하는 우월한 행동이었다.

그동안 이 좋은 걸 지들만 했다니,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이 좋은 걸 너네만 했냐


남편과 아들은 여주 강천보 자전거길을 자주 달렸다. 나에게는 잔디밭에서 누워서 푹 쉬라고 배려하는 듯 돗자리를 깔아주고 말이다. 그들의 라이딩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 육아를 안 해서 부럽다는 친구들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런 내가 이제는 인스타에 내가 직접 타는 자전거를 올리자, 외제차를 살 나이에 왠 자전거냐며 연락이 쏟아졌다. 그래도 초라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자전거를 어떻게 타게 되었을까. 겁이 없어졌을까? 체력이 좋아졌을까? 아직도 넘어지는 건 너무 무섭고 싫어서 남편에게 헬멧을 사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나이 들수록 어지럼증은 더욱 심해져서 내리막길도 아찔하고, 해수욕장의 포토존 계단은 부들부들 떨며 올라간다.


​줄어든 건 두려움과 나약함이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원래 식당에서 상추 더 달라는 말도 창피하고 미안해서 하지 못 하는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용감하다는 말은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내가 무언가를 못하는 모습은 더욱 부끄러워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고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탈 줄 몰랐지만 자전거에 올라앉는 것, 아이들만 자전거를 타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의 시선을 받는 것, 술 취한 듯 지그재그로 비틀대며 자전거를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단 몇 번의 창피함을 버렸더니, 난 오늘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잘 못해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보더라도 기억하지 않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잘 못 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 마흔에 스스로 자전거에 올라 균형을 잡았으니 이 정도면 운동에 소질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어릴 때부터 운동 신경 없고 위험하다며 운동의 기회를 주지 않으신 부모님, 내가 싫어하는지 알고 함께 하지 않고 날 쉬게 해준 남편과 아들. 이제 그들은 나에게 더 이상 "넌 못해~"라는 말은 안 할 것이다. 이번 생에는 망한 줄 알았던 액티비티한 삶이 시작되는 기분이라고 하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까.


코로나가 끝나면 늘 그렇듯 피트니스클럽이나 요가원에 등록할 계획이었는데 수영을 등록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난 이제 수영복을 비집고 나오는 내 뱃살 따위는 부끄럽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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