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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Jul 09. 2021

김장은 싫지만, 김치를 사랑한다.

우리집 김장 스토리



엄마는 내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주말로 김장 날짜를 잡고 기다리셨다. 김장할 수 있는 인력이 엄마, 나, 남편 세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 직후로 김장을 미룬 것이었다. 뭐든지 남들과 비슷한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께서는 겨울이 아닌 가을 중 결혼식을 하는 걸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그 가을 중 최대 늦은 가을인 11월 말 경으로 날짜를 정하셨다. 딸은 시집을 '보낸다고' 남들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입장이시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에 며칠이라도 늦추신 것이다.


 김장에서의 나의 역할은 잔심부름과 애 보기, 남편의 역할은 무 채썰기, 소 버무리기, 소 넣기, 김치통 나르기, 간 보기이다. 엄마께서는 전날부터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김치 속 준비까지 거의 마쳐 놓으신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는 절인 배추를 주문하셔서 사용하신다. 전화 주문 직후부터 배추의 상태가 안 좋으면 어쩌나, 날짜에 맞추어 배추가 도착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시며 예민해지신다. 실제로 배추가 한 번 못 온 적이 있긴 한데, 엄마가 너무 불안해하시니까 배추가 강원도 산골에서 엄마 목소리를 듣고 "자꾸 내 얘기해서 안 갈래." 하고 안 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존재만으로도 김장에 방해가 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른 대가로 보쌈이 삶아질 타이밍에 딱 도착해야 하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해마다 김장 날짜를 나에게만 통보하시는데 마침 나의 결혼기념일일 때가 유난히 많았다. 결혼하고 몇 년을 결혼기념일마다 친정에서 김장을 하거나, 시댁에서 김장을 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냈더니 자연스레 결혼기념일은 아무 이벤트가 없어도 되는 그런 억울한 날이 되어버렸다. 김장이 정말 싫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것이라 기대를 하신 걸까. 결혼과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엄마는 나에게 불만을 쏟아내셨는데, 그 시작이 바로 결혼 후 첫 김장이었다. 열심히 김장 준비를 하시는 동시에 사위의 눈길을 피해서 나에게 화에 가까운 잔소리를 하셨다. 나는 어른이 된 척 묵묵히 그냥 들었고,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마늘과 파를 만지며 코를 훌쩍였다. 엄마는 내게 '결혼하더니 너 이상해졌다'고 했는데, 그 기준은 ‘다른 집 결혼한 자식들’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그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마 엄마께서도 서운한 마음을 참고 참다 터뜨리시는 것이라 짐작은 한다. 하지만 김장하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김장 날짜가 정해짐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난 고음에 취약한데, 내내 아이와 엄마가 동시에 나에게 고음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기분이 든다. 깨끗한 엄마 살림에 흠집이 가고, 깨지고 할까 봐 아이를 수시로 쫓아다니며 잔소리도 해야 한다. 그러면 엄마는 나 때문에 정신없어서 김장을 못 하겠다고 타박하시고, 난 아이를 혼내고, 아이는 집에 가자고 울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홀로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묵묵히 김장을 한다.


 김장이 끝나고 먹는 보쌈은 왜 그렇게 맛있는지,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순식간에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 엄마는 너무 잘 먹는 나를 보고 보쌈을 더 싸주시고 난 집에 가서 소주와 함께 보쌈을 또 먹는다.

  ‘야호! 이제 일 년 동안 김장 없다!’ 나 자신과 건배를 한다.

그렇게 홀가분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한다. “자기는 김장, 하지도 않았잖아.”

 김장김치는 아빠의 비용과 엄마와 남편의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엄마의 힐책에 미소 짓지 못한 미안함과 보쌈에 대한 기대로 잔소리를 참아내고야 마는 나의 노력도 한몫하였다. 김치 안에 들어있는 놀라운 이야기와 나의 눈물은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 친정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하는 거 다 맘에 안 들지!!”라고 소리치고 후회한 임수정만이 알 것이다.


 이제 아이도 크고, 엄마는 늙으셨다. 아이는 김장행사 때 얌전히 티브이를 볼 줄 알고, 엄마는 '결혼한 나와 사위'에 대한 기대보다는 부모도 못 챙기고 아등바등 사는 나를 오히려 안쓰러워하시는 눈치다. 나 역시 김장에 늘 빠지는 '아빠와 남동생'에 대한 원망 따위는 이제 없다. 사위는 갈수록 '김장 실력'이 상승하여 무난한 김장 행사가 해마다 이어져 오고 있다. 이깟 김장이 뭐라고, 김장으로 고생하고 또 한 번 몸살을 앓으실 엄마가 걱정될 뿐이다.


 작년 김장은 결혼기념일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11월 말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하자마자 엄마는 ‘김장’부터 걱정하시며 김장 날짜를 당기셨다. 아버지는 김장하지 말고 사 먹자며, 엄마의 김치보다 사 먹는 종갓집 김치가 더 맛있다는 알 수 없는 말씀으로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셨다. 그럼에도 엄마는 김장을 강행하셨는데 식구들의 일 년 식량을 해 놓아야 마음이 편하시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에 더 아파서 못 할 수도 있으니 할 수 있을 때에 하신다는 약한 말씀도 함께 하신다. 도대체 김장이 뭐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해야 할까. 김장을 비롯해서 뭐 하나 가볍게 생각하시는 게 없으니 자꾸 몸에 큰 병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해 버리면 엄마가 아픈 게 내 탓은 없고 모두 엄마 탓이 되어 버리니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또 김장을 했고, 병원 예약에 심란한 엄마는 김치속 만들기 외의 나머지 작업은 사위에게 위임하셨다. 그리하여 우리 집 2020년 김장김치에선 묘하게 시댁 김치와 비슷한 맛이 난다. 남편은 맛있다고 하고 아빠는 맛없다고 하신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집 김치가 똑 떨어졌다. 살면서 김치가 떨어진 건 처음이었다. 코로나와 휴직으로 인해 집 밥을 좀 더 먹은 이유도 있고 중간중간 시댁에서 해 주시던 알타리, 열무김치, 배추김치, 무생채가 끊긴 까닭도 있다. 김치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남편도 우리가 더 이상 김치를 얻어먹을 곳이 없다는 상황(하루아침에 양쪽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몸이 아프신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도 김치를 반찬으로 먹던 사람이 태어나서 몇십 년 만에 김치 없이 밥을 먹는 것이다.


 남편은 변화에 빨리 적응했다. 문제는 나였다. 김치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김치를 뺀 음식을 하자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처럼 김치가 들어간 음식들은 내가 만들어도 그냥저냥 김치 맛으로 먹을 수 있는데, 다른 음식은 그렇지 않았다. 사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머릿속에 김치가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만만한 달걀 볶음밥이나, 참지전을 부치려니 김치 없이는 느끼해서 못 먹을 것 같았다. 냉동실에 있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니, 지글지글 삼겹살 기름에 김치를 담가 굽지 않는 것은 삼겹살에게 외로운 일이었다. 곤드레밥을 하자니, 김치 없이 먹기는 심심했다. ‘그깟’ 김장김치가 아니었다.


 엄마에게 김치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치를 받러 가서 들을 잔소리가 싫어서였고, 아픈 엄마의 김치를 뺏어오는 것 같아서였다. 무엇보다 매일 나와 아이를 보고 싶어 하시는 엄마에게 자주 가지는 못할망정 고작 김치를 받을 일이 생겨서야 갈만큼 뻔뻔하지 못해서였다. 매일 김치가 없어서 매 끼니 정서 불안에 걸릴 지경이었으면서도 김치 가지러 가는 날을 하루하루 미루며 괴로워했다.


 드디어 어제 아빠께서 컴퓨터 좀 봐달라는 연락을 해 주셔서 엄마께 갈 수 있었다. 양파랑 파랑 바리바리 싸 주신다. 그 김에 불현듯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맞다. 김치 있어요?"

 엄마는 진작 말했으면 김치 들고 우리 집에 왔을 텐데, 왜 이제야 말했냐며 싸 주셨다. 고추장, 된장, 명이나물은 안 떨어졌는지 집에 가는 등에 대고 계속해서 물어보신다. 물론 그날도 다른 일로 잔소리를 한 무더기 들었고, 헤어질 때는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할 걸 하는 후회의 눈빛과 함께 김치를 주고받았다.




 김치는 푹 익었고, 엄마는 더 늙으셨다. 어릴 때는 내 나이쯤 되면 김장은 스스로 해서 양쪽 부모님께 따뜻한 밥과 함께 갖다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맨밥도 겨우 해 먹는 사람이 되어 있다. 김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너무 거대한 일이라 도저히 할 자신이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렇게 난 또 올 11월 결혼기념일 즈음, 엄마의 대학병원 정기 진료일 즈음 김장을 도우러 가서 눈칫밥과 보쌈을 함께 씹게 될 것이다.

 김장은 싫지만 김치는 사랑한다. 엄마의 예민함과 나무람은 눈물 나게 맵지만 엄마와 김장을 계속 하고 싶다. 세월은 거스를 수 없다지만 엄마와 엄마의 김장김치가 영원히 나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유독 세월을 거스르는, 영원히 철들지 않고 영원히 음식 솜씨가 늘지 않는 한 이기적인 주부가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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