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이 흔들릴 때 본능적으로 두 팔을 벌려 수평을 유지하듯이 불안의 엄습이 몸을 구부려 쓰게 했다."
멸종위기등급 ‘취약종’인 기린은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간에 일어난다. 천적을 피해 먹이를 찾아먹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먹이를 찾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소중한 가족을 천적에 비유하기 미안하지만 그들을 피해 혼자 책을 읽기 위해 기린처럼 일찍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마음먹어도 안 되는 것이 새벽 기상이었다. 매번 작심삼일까지도 못 가고 실패했다. 보통 올빼미족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 한 명으로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하루 종일 자지 않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도전과 실패 반복하기를 몇 년, 2020년 10월 30일. 새벽에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와 책을 읽었다. 그렇게 나의 새벽 기상과 독서가 시작되었다.
특별히 대단한 결의를 다진 날도 아니었다. 잠잠해졌던 코로나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는 날이었다. 아이가 매일 등교한지 며칠 안 되었을 때였다. 다시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 중이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휴직은 몇 년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와 함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고대했던 휴직 기간 일상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연장 발표에 맞추어 2주씩 바뀌었다. 2주는 방황하기도 하고, 2주는 야심 차게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다. 2주는 변경된 계획대로 잘 적응하기도 하고, 또 다음 2주는 다시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앞으로 바뀌지 않을 상황에 대비하여 2주 후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름대로 바쁘고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지만 복직 전에 내가 사라져 버리겠다 싶은 기분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불안이 엄습한 나날들, 유난히 나의 멸종 위기를 느낀 그날 본능적으로 새벽에 눈이 떠졌다.
새벽에 일어난 지 다섯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6시에 일어나다가 한 달 주기로 조금씩 늘려 4시 20분에 일어나고 있다. 일어나면 명상과 요가를 하고 감사 일기를 쓴다. 그 후에 책을 읽고 필사를 하거나 책 리뷰를 쓴다. 사람들은 이것을 미라클모닝과 모닝루틴이라고 부른다.
<모닝루틴>의 저자 쓰카모토 료는 새벽 기상이 자기효능감을 높여 주며 아침 5분은 밤 1시간의 효과가 있어서 시간의 질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고 소개한다. 정말 그렇게나 좋을까? 나는 아직도 밤에 더 집중이 잘 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하는 독서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밤늦게 술을 마시거나 산책하던 때를 그리워하고 밤잠보다는 아침잠이 달콤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연구 결과 새로운 습관을 자리 잡는 데에 평균 66일이 걸린다고 했다지만 나는 평균도 안 되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벽 기상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며 모닝루틴도 루틴이라고 하기에는 기분에 따라 자주 변한다. 도대체 미라클모닝의 미라클은 언제 찾아올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알람을 4시 20분에 맞춘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 나의 멸종을 막아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붙들고 있다. 책에 집중 못 하고 잡생각을 하는 날엔 조금은 경쾌해진 머리를, 웬일로 책에 집중한 날엔 사소한 감동에 든든해진 마음을 얻는다. 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여러 가지 감정이 들이닥쳐 불안해진다. 그렇게 또 저녁형 인간은 알람을 맞추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