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미화로 비난을 받기도 했던 드라마 <공항가는 길>의 이상윤의 대사다. 그 장면에서 김하늘은 이상윤의 차에 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당장 TV 속으로 들어가서 차 문을 벌컥 열 듯한 표정이란다. 남편이 불륜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흉보기 시작한다. 저 드라마의 중요한 포인트는 그게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 힘들다. 저걸 보는 이유가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닌데 굳이 변명을 해야 하나 싶다. <나의 아저씨>를 보고 있을 때도 남녀의 나이 차이가 얼만데 둘이 잘 되는 내용이냐고 물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드라마 본방은 잘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드라마를 몰아서 보기 위해서다. 보고싶은 드라마를 하는 JTBC나 TVN을 주로 월정액 가입을 한다. 본방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다음 회가 너무 궁금해서였다. 종영 후 몰아서 한 번에 몇 편씩 보았고, 그러다 푹 빠지면 잠을 포기하며 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드라마를 몰아보는 이유가 달라졌다. 본방을 보면 다음 회 할 때까지 그 감흥을 잊어버린다. 재미와 궁금증을 잊고 일상생활로 금세 돌아가 버리는 것은 물론, 어제 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점점 정주행을 즐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를 보기 위해 본방 사수하는 사춘기 소녀같은 친구들도 있고, 그 날 저녁 한 시간의 낙을 찾기 위해 다른 건 다 깜박해도 드라마 시간만은 잊지 않으시는 엄마도 계시다. 그 외에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서 대신 보고 리뷰해주는 방송 연예 전문블로그나 유튜브를 즐기는 직원들도 있다. 하지만 난 드라마 블로거나 유튜버가 요약해 주는 정성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드라마 줄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대사에 꽂히면 작가가 누군지 검색해보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직접 찾아보아야 한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작가나 블로거가 정리해 준 성격이 아닌 화면에서 파악되는 인물의 성격이 진짜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그 분위기를 느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집중하는 그 시간은 현실 도피의 시간이다. 오죽하면 12시까지 야근하고 와서도 드라마를 이어보기 위해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드디어 비현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시간. 옆에서 현실 속 남편이 자꾸 말을 건다. 출연 배우의 외모와 성격을 평하고, 확실하게 예상되는 남녀 관계나 결말을 비웃기도 한다. 질문도 어찌나 많이 하는지 대사를 곱씹어 들을 수가 없다. 극 중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뻔한 결론보다는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복선과 인물의 감정에 몰두하고 싶은 내 마음을 언젠간 이해해 주려나?
이제 드라마 정주행을 TV로 하지 않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작은 핸드폰 화면을 통해 본다. 표정도 대사도 눈과 귀에 쏙쏙 박히고 블루투스야말로 정주행에 정말 딱이다. 가끔 남편은 뭘 그렇게 재밌게 보냐며 힐끔거린다. 처음엔 저걸 왜 보나 싶다가도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같이 보게 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드라마라고 한다. 그런 나만의 명작들을 같이 보지 못해서 미안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서로 비슷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방법이 다르니 잠시 헤어져 있자. 안 그래도 요즘 보는 <스타트 업>에서 수지가 김선호가 아닌 남주혁을 좋아해서 속상해 죽겠으니 그대까지 날 속상하게 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