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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Dec 18. 2021

2021년, 감사합니다.

지나버린 육아휴직 시간들을 이제야 놓아준다.


 작년 3월,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육아휴직을 시작하였고, 올 8월까지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입학도 취소되고 계획처럼 많은 곳에 가거나 다양한 일들을 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매일 야근과 주말출근까지 하는 엄마와 살던 아이의 건강은 좋지 못했다. 조금만 산책해도 힘들어했고, 불안장애가 있다고 했다. 처음 몇 달은 뒤늦게 인성교육을 시킨답시고, 병원을 데리고 다닌답시고 같이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울다가도 늘 행복감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매일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심적 여유가 노력하지 않아도 긍정의 뇌로 바꾸어 주었다.


 특별히 한 건 없다. 감기 걸리면 제때 병원 데리고 가기, 등굣길에 개미를 발견해도 엄마 출근 늦었다고 재촉하지 않기, 학교 앞에서 아이보다 먼저 돌아서지 않고 아이의 인사를 받아주기. 그 모든 것이 아무 결심과 생각 없이 가능했다.

 

 집에서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우리였지만, 교문 앞에서는 바로 헤어지지 못해 몇 번을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선생님들도 학부모들도 그 모습이 너무 웃기다고 했다.) 집에서 요가를 하면 아이는 내 다리 밑을 기어 다니며 방해했다. 책을 읽으면 아이는 놀아달라 떼쓰다 종이접기를 하거나 만화책을 보았다. 이렇게 별 것 없는 일상들이 순간순간 행복해질 때마다 남편은 불안해했다.


"인사팀에다 바쁘지 않은 부서로 보내달라고 해. 저렇게 애가 좋아졌는데, 다시 야근하고 주말에 나가고 하면 이거 다 도루묵 되지."


복직원을 내러 간 날 용기 내어 말했다.


"쉬다 왔으니, 바쁜 곳으로 보내주세요. 꼭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세요."

인사담당자는 끄덕였다. "필요로 하는 곳 많아요."


복직 하루 전 갑작스레 바뀐 나의 발령지는 제일 바쁜 본청이 아닌 직속기관이었다. 야근과 주말출근은 하지만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어 심적부담이 덜 하다. 감사한 일이다. 쉬는 동안 일머리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저 나이 많은 신규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휴직하면 원래 그렇다고,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릴 거라고 이해해주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다. 본청의 기획예산과, 건축과, 회계과의 업무지원은 매일이 감동이다. 나는 지원부서에 있을 때 직원들에게 저렇게 친절한 적 없던 것 같은데. 혹시 애 키운다고 이 나이에 보직도 못 받고 실무에 시달리는 게 안쓰러워 보이는 건 아닌가 상상해 보기도 한다.(동정도 좋다! 그저 감사하다.)

우리 기관 직원들에게도 늘 감사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데 가끔은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내 할 일을 할 뿐인데 감사하다.




 그래서 그렇게 휴직으로 정리와 회복의 시간을 보낸 지금은 늘 감사해하며 행복하게 사느냐고?

그럴 리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좋은 시절을 맛보았기에,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라는 한심한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 확진자만 나와도 아이를 결석시키다, 복직 후 학교와 학원으로 돌리다 보니 아이는 코로나 검사를 몇 번이나 받아야 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다시 아프곤 하지만 병원을 자주 갈 수 없는 것.  자연스레 끊었던 티브이에 다시 중독된 것. 그 모든 것에 감사하기는 힘들다.

 

 코로나로 하루에 몇 번씩 바뀌는 학교 일정을 문자로 받을 때마다 남편과 친정엄마와 학원 원장님들과 방과 후 선생님들과 개인 레슨 선생님께 연락을 돌릴 때마다 못해먹겠다 싶다. 무엇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새벽 기상을 한 후 피곤함에 계속 졸기만 하는 내 모습.  그냥 다 포기하고 출퇴근만 하면 안 될까?



                              


 올해 감사일기를 숙제로 받았을 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감사한 거 말고 화난 거 슬픈 거 고르라 해도 역시 힘들었겠지만.)


 어제 몸이 안 좋아 갑자기 휴가를 냈다. 연말연시는 휴가를 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쉬어버리자 싶었다. 아이에게 올해 마지막 휴가이니 학교 가지 말고 빈둥대자고 했다. 평일 대낮에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손 잡고 비명을 지르고 뛰어다니다 보니, 휴직 때 아이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의 공기와 기분이 그대로 다가왔다. 그 시절을 그저 그리워만 하고 있는지 알았는데 감사하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이 평온했다. 고작 몇 달만에 그 감사한 시간에 받은 에너지를 잊고 있었다니.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음을 알았다. 이렇게 하나라도 밀린 숙제를 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이도 짧고 굵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아프더라도 이겨낼 것이다. 혼자 시작해야 하는 것들이 빠르게 늘어나겠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리라 믿는다. 우린 함께하는 시간 동안 더 나쁜 상황들을 몽땅 이겨낸 경험을 했으니까.


 무급휴직까지 싹싹 끌어 썼기에 영원히 재현할 수 없는 그 시간들에 감사한다.  복직 후 적응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보내 준 2021년에게 감사한다. 


 다시 등하교를 남편이 맡고 있어 학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감격해서 울컥하곤 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살 것이다.


2020년 6월 처음 학교가는 날, 등굣길과 하굣길


내 인생에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준 세상인데, 설마 날 이대로 이렇게 버리진 않을 거야.

(대한민국 직장인이 나처럼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은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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