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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Jan 24. 2022

쓰고 싶지 않다면서 쓰는 이유

글쓰기를 빙자한 생일선물 자랑


브런치 알림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오랜만에 브런치 앱에 접속했다.  예상했던 그 알림이 들어와 있다.몇 주에 한 번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뜨는 메시지이다. 매혹적인 ‘작가님’, '재능' , '책'이란 단어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꾸준함'이란 단어에 불안해져 블로그 앱을 열어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다.


 직업병인지, 옛날 사람이라 그런 지 모르겠지만 한글 파일을 열어야 뭐라도 쓰게 된다. 습관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고, 분량 조절도 쉽다. 늘 1,000자 내외가 목표인데 자꾸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컴퓨터 방에 들어가기가 귀찮아 오늘도 스마트폰을 연다.


 당장 무엇을 제일 쓰고 싶은가 생각해 보면 늘 같은 결론이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소한 느낌을 끼적이고 싶다. 서평이라 부를 수 없는 부족한 리뷰에 그치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걸 하기 위해 뒤늦게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돌아 보면 읽는 책들마다 나에게 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단다. 글을 써야 한단다. 매일 써야 한단다. 그 글을 꼭 공개해야 한단다. 그렇게 꾸역꾸역 며칠에 한 번씩 남들이 글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행한다.




한 번씩 찾아오는 질문이 있다. 왜 글쓰기를 하는가?


처음엔 막연히 읽고 쓰기를 하고 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었다. 따져 보면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것들을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다니, 멋있고 부러워 죽겠다.


하지만 결국 잘 쓰는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읽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난 뭔가 한 꼭지 쓰려면 무지막지하게 시간이 걸린다. 쓰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독서량이 더욱 줄었다. 독서 모임, 원서 읽기 모임의 책과 서평단 책까지 총 3권이 벽돌처럼 쌓인채로 그저 날 노려보고 있다.  독서에 대해서 거의 정지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읽지 않을수록 쓰고 싶은 욕구도 점점 줄어든다.


그러니 계속 써야 하는 거 맞니?라는 질문과 함께 다음 질문도 따라온다.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참으로 버겁다. 그렇다면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중에 하나만 선택한다면?


 단연 읽는 사람이다. 읽는 사람은 소비자고, 쓰는 사람은 생산자라는 말 역시 날 설득할 수 없다. 음식도 사 먹는 게 좋고, 무슨 물건이든 만드는 것보다 살 줄만 아는 사람이다. 아주 작은 수선도 세탁소에 맡기고야 마는 쾌락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다 때려치우고 독자로만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책 리뷰 쓸 시간에 많은 책을 읽고 자주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이 즐겁지는 않다. 늘 써놓고 나면 대학교 때 짜깁기해서 제출하던 리포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나에게 명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글을 쓰는 동안 하는 생각은 ‘오늘은 뭘 쓰지, 이다음 줄은 뭘 쓰지, 왜 이렇게 못 쓰지, 왜 아무 생각도 없는 거지.’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쓰는 동안은 '글을 못 쓴다'라는 생각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하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명상 가이드는 호흡에 집중하라고, 자기 계발서는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단 몇 초라도 집중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집중에 애를 쓸 수록 다른 생각을 하거나, 잠이 들어 버린다. 사무실에서 급한 일로 몸이 달았을 때 말고는 몰입이란 걸 해본 지 오래되었다. 직장에서는 집, 집에서는 일, 책을 보면서는 집안일, 자면서는 사람들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오롯이 그것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 경험을 지금 버리기가 쉽지 않다.(일종의 현실 도피이기도 하다.)


 몇 달 쓰기 시작 한 후 글 쓰는 이유가 조회 수와 라이킷 수를 늘리기 위함이 될 뻔했던 나날들이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포털 메인에 오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지었다. 내 글을 몇 명이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브런치 추천 글에 올라오면 누군가에게 자랑은 못 하고 혼자 하루종일 싱글생글했다. 그때도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조회 수가 몇천을 찍어야 겨우 구독자가 1명씩 생긴다. 구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계속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라고 자신에게 설명했다.


 지금은 다르다. 누가 글을 보는지, 재미있어하는지, 댓글이 뭐가 달리는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SNS 알림 설정을 꺼 놓은지 꽤 되었다. 관종에서 벗어나 쿨해진 것 까지는 아니다. 게을러서 답방을 거의 못 가는 이유가 더 크다. 그저 매일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될 때까지 흔히 말하는 글쓰기 근육부터 키우기로 했다.


                              

 이번 주에 생일선물로 남편에게 노트북을 받았다. 명품 가방보다 비싼 노트북을 받은 것도 아니다. 해마다 받은 다른 생일선물과과 의미가 남다르다. 드디어 나의 ‘작가 놀이’를 인정해 주겠다는 뜻이다.  집에 데스크톱, 여러 대의 태블릿, 스마트폰,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어 맘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스마트폰과 엄지손가락만으로 출간한 작가도 있으니 말이다.) 연장을 탓하는 솜씨나쁜 목수라 자처하는 꼴이지만 진짜 작가들처럼 노트북으로 쓰고 싶었다. 함께 블로그 글쓰기를 하는 분들을 비롯한 글 잘 쓰는 분들도 거의 노트북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ㅎㅎㅎㅎㅎ


 그리고 아들은 생일선물로 엄마가 책을 좋아하니(?) 책을  많이 사주겠다고 한다.(책 속에 스마트폰을 숨겨 놓고 보는 광고 속 엄마가 떠오른다.) 매일 읽고 쓰지 않는 내가 우리 집에서는 이미 읽고 쓰는 사람으로 퍼스널 브랜딩이 확실하게 되어 있음을 깨닫는 생일주간이었다. (퍼스널 브랜딩이라 쓰고 사기라 읽자.)


 그러므로 계속 써야 한다.  남들보다 느린 속도이지만 끊임없이 쓰다 보면 쓰는 속도가 빨라질 테고, 그러다 보면 읽을 시간도 점차 늘어날 테다. 읽는 양이 늘어나면 나만의 철학이 생기는 날도 오겠지. 그러면 그땐 글도 잘 쓸 수 있겠지!!! 그러면 글쓰기가 즐겁겠지. 브런치가 알림으로 알려 준 꾸준함의 힘을 믿는다.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이 다음 달이면 또 바뀔 것이다. 다른 이유로, 아마 계속 쓰고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아들한테 뺏긴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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