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g Mar 11. 2022

나의 리추얼, 미라클모닝

미라클모닝 도전 3년차지만, 아직도 아침잠을 사랑합니다

늘 하던 사소한 행동을 하나 안 했을 뿐인데, 그 후에 하던 행동들이 우르르 무너질 때가 있다.




연말에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 저녁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4시간까지는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 보통 연말에는 예산이 없어서 못 받는 부서도 많지만, 근무하던 부서는 그렇지 않았다. 야근은 매일 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또한 사소한 루틴을 기억해야 한다.


1. 매일 오후 마감시간 전까지 사유와 함께 초과근무를 신청한다.
2. 서무담당자가 취합하여 국장님까지 결재를 받는다.
3. 초과근무 후에 퇴근할 때 지문으로 퇴근 등록을 한다. 초과근무한 것이 인정되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달 부터 시스템이 또 바뀌었다.)
- 초과근무수당을 받기 위한 루틴 -    


워낙 덜렁대는 성격이기에 사전에 초과근무신청을 안 하기도 한다. 깜박하고 손가락 지문을 등록을 안 하고 퇴근하는 경우는 더 많다. 그런 날은 수당을 못 받고 나 자신을 미워하며 일하는 것이다. (너 진짜 바보할래?)


연말에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사유로 지문인식을 안 하고 퇴근한 적이 있다. 보통 11시 이후에는 혼자 야근을 한다. 아이가 있어서 가끔 몰아서 했기 때문이다.

야근 후에는 여섯가지만 하고 퇴근하면 된다.


1. 공용테이블에 있는 보안점검 일지 작성(최종퇴청차만 작성)
2. 공기청정기 전원 끄기
3. 대기전력 차단스위치 돌리기
4. 사무실 불 끄기
5. 사무실 자동키 잠그기
6. 복도 지문인식기에 손가락 꾸욱 등록하기

- 야근 후 5분루틴 -    

더 늦게까지 야근하는 직원이 있어서, 먼저 퇴근하게 되었다. 마지막 퇴청자가 아니니 일지도 안 쓰고 이것저것 전원도 안 끄고 그냥 퇴근하면 된다. 좋다! 신난다! 하면서 손가락도 안 찍고 퇴근해버렸다. 내 행동이 너무나 합당해서 수당 못 받는게 억울하지도 않더라...




하루는 무수한 사소한 루틴으로 이루어진다. 게으른 나는 아침마다 뭐에 쫓기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가서 차까지 뛰어간다. (아이는 좀비가 쫓아온다! 뛰어! 하며 따라서 뛴다.)


귀가가 늦은 날은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지상에 주차한다. 그래도 출근은 변함없이 지하 1층에서부터 시작된다. 굳이 더 멀리 있는 지하주차장 늘 주차하던 자리까지 뛰어갔다가 다시 1층으로 뛴다.이런 날은 왠지 오전 내내 좀비에게 쫓기는 놀이하는 기분이 든다.




일상을 주도하지 못 하고 무의식에 갇혀 단조로운 루틴들에 쫓기는 걸로 보일수도 있겠다. 하루를 가득 채운 사소한 루틴들 앞을 지키고 있는 국직한 리추얼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재작년 11월 1일에 처음 시작해 꽤 꾸준히 하던 새벽 기상이다. 복직 후부터는 퐁당퐁당하고 있어서 습관이라 부를 수 없다.


일어나서 양치하고, 물마시고, 아침영양제를 먹는다. 요가하고,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하거나 블로그를 한다. 기상 시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계획된 루틴을 다 할 수 있는 날은 며칠 안 된다. 요가만 겨우 하고 출근하는 날이 더 많다. 내일은 정말 일찍 일어나야지 결심하며 일찍부터 누워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다.


새벽 기상을 해야 양치하고, 물마시고, ...부터 시작하여 차곡차곡 하루를 쌓을 수 있다. 새벽 기상하지 않은 날은(오늘) 시작부터 뭔가 어긋난 느낌이다. 뭐부터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물 한잔 안 마시는 하루가 시작되고 마는데, 그건 그저 새벽시간이 없어져서 바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퇴근 후 아이를 씻기고 저녁먹이는 최소한의 엄마놀이만 해도 밤이 된다. 칼퇴 하거나, 약속이 없는 날이 그렇다. 아이 재우기 전 잠깐 난 시간 동안 요가, 독서, 글쓰기 등 새벽에 못한 것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만다.




새벽 6시 반이 넘어가면 아이를 챙기거나, 청소를 하거나, 출근 준비를 한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이 보통 '미라클모닝'이라고 부르고 '나만의 시간'이라고 쓰는 새벽시간이 약간 생기는 것이다. 그 살짝의 틈이 있어야 하루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하루를 마감하고 잠들 수 있다. 일찍 잠을 청하기도 하고 깊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알람에 깨지 않은 적은 없다. 깨어난 후 이불을 박차고 몸을 일으키는 행위는 정성스러운 마음(일어날까 말까 백만번 고민하기)과 굉장한 에너지 (무거운 이불을 걷어내는 괴력)와 의식적인 노력(눈을 다시 감지마, 몸을 다시 눕히지 마. 제발! 제발!!!!!) 을 담은 몸짓이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지 않은 날, 사소하고 단순했던 하루마저 애매모호해진다. 오늘을 시작할 수 있는, 또한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나의 리추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온도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